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07 조회수1,12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Courage, daughter!
Your faith has saved you."
(Mt.9,22)
 
 
제1독서 호세 2,16.17ㄷ-18.21-22
복음 마태 9,18-26
 

어떤 물건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아주 유용하게 쓰던 물건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분명히 방 어딘가에서 “저 좀 사용해주세요.”라면서 저의 손길을 기다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이 물건을 찾았습니다. 분명히 이 서랍에 둔 것 같은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더군요. 방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쉽게도 원하던 물건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물건을 찾지 못했다고, 찾음 자체가 쓸데없는 행동이었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찾다보니 정말로 좋고 중요한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서랍이나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물건들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지저분한 제 방을 청소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제게 준 이로움이었지요.

이 체험을 하면서 문득 들은 생각입니다. 하느님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우리는 많이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그런 노력을 통해 하느님을 발견하셨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 더군다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유한하고 부족한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찾다가 더 중요한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느님을 찾는 노력들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가치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기 위한 노력들을 통해 우리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가치들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회당장이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 부탁에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길을 떠나시지요. 그런데 길을 가시다가 자그마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지요.

왜 이 여인은 떳떳하게 예수님 앞에 나서지 않았을까요?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지속적으로 하혈을 하는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 자기 집이나 고향에서도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생각해봅니다.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사람들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몰래 예수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는 것이었지요.

바로 이 노력이 그녀를 구원으로 이끕니다. 그런데 이 노력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떠한가요? 혹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휴식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즐거운 놀이를 한다는 것은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또 그 사람들이 바쁘게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때도 있다(톨스토이).


 

나만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방과 후 숙제로 글짓기를 내주셨지요. 주제는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집에 와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를 몰라서 끙끙댔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글쓰기를 잘 하지도 또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제 바로 위의 형님이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형님도 학교 숙제로 글짓기를 썼던 것이 기억났거든요. 형 책상서랍에서 그 원고를 발견했고, 저는 그 원고 내용을 그대로 저의 원고지에 옮겨 적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 이런 행동을 ‘표절’이라고 하지요. 저는 이 표절을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것입니다. 물론 죄가 되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아무튼 학교에 가서 자신 있게 제출했습니다. 당시 형은 중학생이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가 제출한 글을 보시더니 제게 이렇게 묻습니다.

“조명연, 그런데 네가 쓴 글의 주제가 뭐야?”

“....”

“네가 쓴 글인데도 주제를 몰라?”

“....”

그냥 옮겨 적어서 내용도 잘 모르는데 주제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글이든 중요한 것은 그 글이 알리고 싶어 하는 주제입니다. 그 주제가 잘 들어나야 좋은 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냥 옮겨 적은 글에 대해서는 주제 파악을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요.

자기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야 어떤 목표를 향해 일관성 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만의 주제는 과연 무엇입니까? 혹시 다른 사람을 따라 살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