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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자랑, 하느님 자랑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0 조회수1,037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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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0.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호세11,1-4.8ㅁ-9 마태10,7-15


 

내 자랑, 하느님 자랑


지난 밤 무척 더웠고 내내 하느님만 생각했습니다.

늘 하느님을 목말라 했고

지금도 목말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살아있는한 하느님을 목말라할 것입니다.

 

하느님만으로 행복했고, 하느님만으로 부요했고, 하느님만으로 자유로웠습니다.

내일(7.11) 요셉수도원에서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1989.7.11.일 사제서품) 감사미사를 앞두고

지난 세월 뒤돌아보며 저절로 나온 고백입니다.

 

지난 3일간(7.7-9일) 참 행복했습니다.

 

어제(7.9) 저녁식사 때는 여기 장충동 수도형제들이 마음을 다해 미리 제 은경축을 축하해 줬습니다.

축가를 우렁차게 불러줬고 케이크를 자를 때는 우레와 같은 축하의 박수를 쳐주니 행복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수도형제들의 축하가 최고의 기쁨입니다.

 

또 전날(7.8)에는 남양성모성지와 요당리성지를 순례하며 성모자상을 껴안고 사진을 찍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이 장면으로 하루는 온통 행복했고 살아있는 한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입니다.

난생 처음 성모자분을 껴안고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여러분에게 보냈고 유쾌한 답도 받았습니다.


-*신부님, 넘 귀여우세요.ㅎㅎ 성모님 품에 어찌도 그리 잘 맞게 안기셨어요?

*아름다운 사진이네요.

*신부님의 단순한 마음과 오로지 성모님께 의지하는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어요.

*우와, 이제 신부님도 드디어 카톡세계에 입문하셨군요. 사진이 아주 근사합니다.

*예수님과 신부님이 성모님 치맛자락 감싸시다니. 신부님 맞는가요. 즐겁고 행복해 보입니다.

*와우! 여기가 어딥니까? 아주 젊어 보이십니다.

*이 사진 예술이네요.ㅎㅎ 너무 잘 어울리네요-


모두 부러워하며 즉시 답을 보내 저의 행복에 동참한 착한 도반들입니다.

 

이어 전날(7.7)의 행복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수도원 입회전

초등학교 교편시절 마지막 해(1981년 초등학교6년) 제자들 10명이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무려 졸업후 33년만이니

당시 13세의 아이들은 모두 46세의 장년이 되었지만(나는 33세에서 66세가 됨),

여전히 순수한 동심으로 스승인 저를 너무 반기고 좋아했고

모임이 끝났을 때는 모두 나와 함께 걸어 장충동 수도원 문 앞까지 바래다 주고 떠났습니다.

 

참으로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 온 제자들이었습니다.

식사시에 찍은 사진이 너무 자랑스러워 몇분에게 카톡으로 보냈고 즉시 답도 받았습니다.

 

- *어머나 이렇게 많이 모였어요? 벌써 40대들이네요. 참 대견스럽고 훌륭하네요.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절로 감사 찬송이 나오네요.

*다들 훌륭히 됐을 거 같은 모습들이 좋네요. 신부님은 선생님으로도 성공하신 분이란 증인들!-


바로 은경축을 앞두고 하느님 주신 풍요한 선물들입니다.

제자랑 같지만 결국은 하느님 자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랑이듯이 하느님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감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제 자랑, 하느님 자랑을 오늘만은 하고 싶습니다.

 

올해 안식년을 맞기 전, 1989년 7월 11일 사제서품후 2014년 오늘까지,

외국에 나가 있었던 2년 남짓의 기간만 빼놓고 저는 요셉수도원에서 하루하루 전부를 쏟아 살았습니다.

한 번도 성무일도 빠진 적 없고, 한 번도 미사 빠진 적 없고, 하루도 강론 쓰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참 치열하게 살았고 바로 이에 대한 고백이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작시입니다.

 

아픈 적도 거의 없었고 웬만한 아픔은 이기고, 밥은 안 먹더라도 미사와 기도는 꼭 참석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늘 목말라 했고 사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기적이요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위업입니다.

 

그러니 제자랑 같지만 결국은 하느님 자랑입니다.

 

저절로 터져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듯, 하느님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 있습니다.

 

새무얼 울만이 '청춘'이란 시가 생각이 납니다.


-진정한 청춘이란 젊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정신 속에 있다.

중요한 것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정열이다.

펑펑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당신 정신은 오늘도 신선한가?

생동감이 넘치는가?

용기 없는 정신 속에 청춘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랑을 위해 드러내는 용기와 모험 속에 청춘은 존재한다.

용기 없는 20대 라면 그는 이미 노인, 용기 있는 60대라면 그는 한창 청춘이다.-

 

새무얼 울만(영국 시인) -


시인이 이 시를 지은 것은 그의 나이 일흔 여덟 살 때입니다.

 

오늘 복음의 사도들에게서 주님을 빼놓으면 완전 허무이듯이, 저 역시 주님을 빼놓으면 완전 허무입니다.

주님 함께 계시기에 의미 충만한 사도들의 삶이었듯이 저 역시 그러합니다.

 

과연 무엇을 보고 살아있다 할 수 있는지, 과연 살아있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 없이, 주님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 과연 살았다고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묻게 됩니다.

 

하느님을 몰라 육신은 살아있어도 정신은, 마음은, 영혼은 죽은,

'참 나'를 잊고 사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진정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영혼이 살아있는 사도들입니다.

주님과의 일치의 정도가 살아있음을 재는 척도입니다.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존재감 충만한, 진정 살아있는 삶입니다.

하여 가장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충만한 존재감을 느끼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주님만으로 부요했고 행복했고 자유로웠기에,

이런 무소유의 가난은 사도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무소유의 텅 빈 가난을 통해 실현되는 하늘나라요 샘솟는 주님 평화의 선물입니다.


호세아 역시 하느님과 일치의 삶을 살았던 예언자였습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의 마음에 정통했던 호세아였습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무한한 연민과 인내의 사랑을 지닌 하느님이요,

이런 하느님의 연민과 인내의 사랑을 닮았던 호세아는 진정 살아있는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무한한 인내의 사랑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단도리한 호세아 예언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만이 우리 삶의 전부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지혜16,2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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