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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배티 성지, “베드로야, 마리아야, 루시아야...... 문 좀 열어라!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1 조회수1,114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베드로야, 마리아야, 루시아야......

 

칠고의 매괴성모님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피정을 하러 갈 때 주로 차를 이용하지만

가끔은 버스를 타고 피정을 갈 때도 있습니다.

버스를 타러 가면 표를 받을 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서울까지 1시간 반 동안 과연 내 옆에 누가 앉을까!'

표를 살 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경우는 두 가지인데 내가 먼저 앉아서 옆에 사람을 기다리는 때가 있고,

내가 빈자리를 찾아가서 앉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먼저 앉아 사람이 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버스를 올라오는데 보니까 얼마나 무섭고 험상궂게 생겼던지~

저는 즉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뒷자리도 텅텅 비었습니다. 저 사람 이 자리에 앉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덜커덕’ 내 옆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재수 옴 붙었구나! 말 걸었다가는 얻어터지게 생겼다!’

 

 

묵주기도 하면서 한 20분 가다가 불현 듯

그래도 내가 명색이 신부인데 수십억 인구 중에 주님이 이 사람을

내 옆에 앉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텐데.....

하면서 용기를 내어 귤 하나를 권하며

“선생님, 이것 좀 드시겠어요?”

"신부님, 맞으시죠?”

‘옳거니, 신부를 알아보는구나!’

네, 신부입니다.”

"신부님, 제가 냉담한지 20년 되었는데 본명이 베드로입니다. 신부님 앞에서는 죄인이지

그 사람은 지금 바람 피우는 마누라 죽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흥신소를 통해 어느 모텔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가는 길이라며 잠바 안주머니에

종이에 뚤뚤 말은 부엌칼을 보여주며

“그 년 놈 죽이고 저도 제 목 딸 겁니다.”

세상에~ 20년 묵은 냉담하던 고기가 하나 걸려들었는데~

이게 칼 든 고기야!

 

 

 

칼을 아무리 달라고 한시간 내내 얘기해도 줘야 말이지~~

여러분 아시다시피 내가 말을 좀 잘 합니까^^

칼을 달라고 오만 얘기 다 해도 내놓지 않고

"신부님, 자꾸 그러시면 저 뒷자리로 갈 겁니다. 어차피 저는 인생 끝난 놈이고...

지옥 갈 놈입니다. 불쌍한 저를 위해 기도나 한 번 해 주십시오”

결국 칼을 빼앗지 못하고 유리창을 바라보며 묵주를 꽉 움켜쥐고

속으로 심령기도를 중얼중얼 ~~

이 영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버스가 강남터미널에 우회전을 하며 꺾이는데 그 양반이 나를 툭 치더니

“신부님, 칼 받으십시오.”

하면서 주는 거예요, 어찌나 기쁘고 고맙던지~

신부님 말씀대로 그 모텔방에서 내 아내만 끌어 내 오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눈이 뒤집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장담은 못하겠지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차 안에서 강복을 주고 끌어안아 주며

“베드로씨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영등포 쪽으로 피정을 갔는데 피정을 하는 내내 머리 속에서는

 

'오늘 베드로씨가 무슨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그 다음 날 신문에 '혹시 불륜의 아내를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 다음 일요일 교중미사를 드리는데 한 가운데 큰 남자 옆에 고목나무에

매미 달라붙은 듯한 쬐끄만한 여자가 미사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베드로씨야~

여자는 죄를 지었으니 미사 한 시간 내내 울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 베드로가 부인을 데리고 미사에 왔구나!’

미사가 끝나고 사제관으로 불렀습니다.

 

 

그 베드로씨 얘기가 신부님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 모텔을 찾아 가서 흥신소에서

알려준 대로 몇 호 방 앞에서 한 시간을 망설였대요.

'차라리 돌아갈까...... 못 볼 것 보면 어쩌나~’

주의 기도를 외우면서 문고리를 살짝 돌리니 문이 열려 있더래요.

‘이 연놈들이 배짱도 좋구나!’

문을 열어 보니 남자는 이미 멀리 가 버리고~

부인이 입에 극약을 털어 넣으려고 하더랍니다.

 

 

그걸 보고 “나 너 무조건 용서한다. 우리 집에 가자!

내가 오늘 신부님 만나 살인하고 싶은 마음 없어졌다.”

말에 부인은 남자 품에 안겨 몇 시간을 엉엉 울었습니다.

 

 

“우리 그 신부님 만나 고맙다는 인사 하러 가자!”

저는 그 사람을 끌어안아 주고, 밥 먹여 보내고 나서

혼자 감실 앞에 가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만일 내가 내 옆에 앉은 인간이 험상궂다는 선입견 때문에

묵주기도 했으면 몇 십단은 하고 올라갔을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신문에 아내를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분명히 나왔을 겁니다.

 

 

 

☆이러한 선입견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가로막습니다.

어떤 만남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질과 색깔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불편하게 만드는 것 중에 많은 것이

'이 인간 이럴 것이다.’,

'저 사람 인상이 교활하게 생겼으니 이럴 것이다!’

‘저 인간 소문 들어보니 바로 이렇다더라!’

바로 선입견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선입견의 노예, 희생물이 되신 겁니다.

‘이 사람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이 사람 그 마리아의 아들 아닌가?’

이런 분위기에서 설교와 기적을 행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환자는 의사가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살려고 하는 의지를 신앙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이 보시고 병들어 있는 것 고쳐주시고자 하지만

그것을 거부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성체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냉소적이고 때론 예수님을 원망까지 한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어떤 치유도, 기적도 행하실 수 없습니다.

유명한 聖畵(성화)중에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10년 동안 기도하다가 영감을 얻었는데

 

<묵시록 3장 20절>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나도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그 그림이 왜 그리 유명한 그림이 되었을까요?

밖으로는 문고리가 없어서 반드시 안에서만 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베드로야, 마리아야, 루시아야...... 문 좀 열어라!

내가 들어가서 너와 같이 만찬을 하리라!”

 

 

<시편 81장 10절>

다만 입을 벌려라. 내가 채워 주리라.

 

입을 다물고 있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아무리 들어오시려고 해도 들어오실 재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은 우리 자신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변함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리를 찾아오시지만....

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비판적이고/ 냉랭하고/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반성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쫓아내는 나 자신이 되지 말고 예수님을 통해 치유 받는

거룩한 우리자신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배티 성전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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