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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3 조회수949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7월 13일 연중 제15주일
 
 
But some seed fell on rich soil, and produced fruit,
a hundred or sixty or thirtyfold.
(Mt.13,8)
 
 
제1독서 이사 55,10-11
제2독서 로마 8,18-23
복음 마태 13,1-23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원주민들은 곡식과 음식 창고를 약탈하는 야생 원숭이를 잡는 독창적인 기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원주민들은 빈 코코넛 껍질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을 만듭니다. 그리고 코코넛 안에는 미끼로 쌀을 집어넣고 그 코코넛을 땅에 묶어 두지요. 원숭이는 냄새를 맡고 이 코코넛 안의 쌀을 집기 위해 손을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쌀을 잡은 주먹 때문에 구멍 밖으로 손을 꺼낼 수가 없지요. 당연히 도망가기 위해서는 쌀을 놓아야 하는데, 쌀에 대한 욕심 때문에 덫에 갇히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인간들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놓아주지 못해서 거기에 갇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항하면 할수록 몸만 아프고 덫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도, 세상 것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 때문에 차마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욕심을 내려놓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들을 한두 번은 다 해보셨을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서 얼마나 힘들어 했었는지를……. 때로는 억울하고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에 대한 욕심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오히려 안심이 되고 편안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재물에 대한 소유도 어느 정도까지만 행복을 가져다 줄 뿐, 그 뒤로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어떤 신문 기사에서 본 것이 기억납니다. 행복은 재물에 대한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어떻게 되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씨는 주님의 말씀이며, 씨가 떨어진 장소가 바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어떠한지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먼저 ‘길’은 세상의 것은 모두 알지만 하느님의 것은 조금도 모르는, 이 세상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길은 온갖 사람의 발아래 밟히기 때문에 단단하고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꽉 막힌 자들의 마음입니다. 다음으로 ‘돌밭’은 자신의 신앙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마음입니다. 이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공경은 얄팍하고 뿌리가 없습니다. ‘가시덤불’은 재물만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재물에 대한 관심사들로 인해 주님의 말씀이 숨 막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은 주님의 말씀이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받아들이는 참 신앙인의 마음인 것이지요. 좋은 땅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과 같이 필요 없는 곳에도 당신의 기쁜 소식을 뿌리십니다. 좋은 땅만 선택하면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좋은 땅’이 되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길가, 돌밭, 가시덤불을 내 마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는 낫지만 그 흔적은 남는다.(J. 레이)

 

진정한 존중이란?

미국 서부에 있는 어떤 여고 농구팀이 장애인 학교 농구팀이랑 게임을 했는데 100대 0으로 이겼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너무 가혹했다는 이유로 코치가 해고되었지요(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틀 후에 한 신문에서 코치를 인터뷰했습니다. 코치가 답하길, “상대를 존중했기에 최선을 다했다.”라는 것입니다. 장애인 팀이라고 봐주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자칫하면 배려가 아니라 값싼 동정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100대 0은 너무한 것 아닐까요? 이것이 과연 진정한 존중일까요? 저는 판단이 잘 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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