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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씨'의 역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3 조회수1,203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5주일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복음: 마태오 13,1-23





구세주


 모스크바 화파 작, (1330 경)

 


     < '씨'의 역할 >

  

개그콘서트에서 나쁜 사람이란 코너가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우리는 이 나쁜 사람이 결국 도둑이 아니고 그를 취조하는 형사들이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재밌어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지막 날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웃을 수 있을까요?

한 도둑이 잡혀옵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놈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치며 무서운 형사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빈집털이범의 멱살을 잡으며 그 집에서 무엇을 훔쳤느냐고 소리 지릅니다.

도둑은 떨면서 잘못했다고 하며, 그 집이 얼마 전까지 자신이 살던 집이었는데,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쫓겨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저 누우셨다고 합니다. 여동생에게는 아버지가 열 밤만 자면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오늘이 아홉 밤 째라고 말합니다. 판잣집에서 사는데 지붕까지 바람에 날아가 비를 맞으며 잤는데, 동생이 자꾸 아빠를 찾아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너무 불쌍해서 놓아주려고 하는데, 더 무서운 형사가 또 소리를 지르며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가 훔친 토끼인형을 마구 찢습니다. 그것만 훔치러 들어갔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둑은 그 토끼 인형이 동생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형사는 미안해하며 그것을 물어주겠다고 합니다.

도둑은 그것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이라 살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형사들이 모두 자신들이 한 일을 뉘우치며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하며 끝나는 것입니다.

   

도둑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도둑은 나쁜 사람이 됨으로써 그 도둑을 나쁜 사람으로 몰고 있는 사람들의 감추어져 있는 진짜 나쁜 면을 들추어냅니다. 사실 그 도둑을 판단하는 형사들이 나쁜 사람들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당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지만 많은 경우에 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자아때문임을 압니다. 자아는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셔야 하는 우리 마음을 자신이 주인이라고 처음부터 또아리를 틀고 나가려고 하지 않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게 만드는 뱀이고 바알이고 우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자아가 강한 사람, 즉 자아가 강해서 자신은 의인이고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을 개요 돼지라고 하시며 거룩한 것을 개에게, 진주를 돼지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들보, 즉 죄의 원천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빼내어 주겠다고 말하는 이가 바로 개요 돼지이며, 말씀의 씨가 뿌려져봐야 소용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짓밟고 달려드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스테파노가 순교하기 직전 하늘나라의 신비를 유다 지도자들에게 말을 할 때,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를 막았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었다(사도 7,5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하실 때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개요 돼지인 이들이 자아가 너무 커 그것의 영향으로 귀가 먹은 이들로 나오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사도 7,51)

목이 뻣뻣하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것이고, 자신을 신으로 여겨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이들이 바로 교만한 이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항상 네 자신을 버리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는 자아가 아주 강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길과 같은 사람이고, 조금 약해지기는 해서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쁘지만 그 기쁨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들이 돌밭과 같은 이들이고, 자아를 많이 죽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어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세상 걱정을 하며 자신 안에 찾아온 평화를 스스로 숨 막히게 만드는 이들이 가시밭과 같은 이들인 것입니다.

만약 씨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이 어떤 처지의 땅인지 모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씨의 역할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 땅이 좋은 땅인지 나쁜 땅인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많은 땅에 뿌려졌지만 실제로 그들이 예수님께 달려들어 그분을 살해함으로써 자신들이 어떤 땅인지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 자아가 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아예 하느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거나,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거나, 평화가 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은 뽑힌 이들이 아닙니다. 만약 뽑힌 이들 대열에 들고 싶다면 빨리 자신을 버리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자아를 죽을 수 있을까요? 자아를 없애주시는 분도 하느님임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를 정화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제자들처럼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오래 머무르려는 의지를 보여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유말씀의 풀이를 당신 제자들에게만 해 주십니다. 이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를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만 당신을 더 드러내 보이시고 더 좋은 밭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복음말씀은 심판에 관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좋은 밭으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라며 그분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죽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바알이 바로 나 자신, 곧 자아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그분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그분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자아를 버리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이도 바알의 우상, 즉 자아를 죽인 정도만큼 열매를 다르게 맺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깊은 깨달음으로써, 마치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착각했지만 결국 자신을 섬기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배반한 것처럼, 우리 자신의 처지를 알게 하심으로써 자아를 깨부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아가 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자아 때문에 희생당하는 분이 있어야합니다. 그 희생을 통해서만 자아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제자가 분노하며 상기된 얼굴로 찾아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대낮 거리에서 여자들을 희롱하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 탓이네!”

아랫마을 푸줏간 일꾼이 저울을 속여 파는데 그런 도둑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탓이네!”

윗마을에 사는 세리가 돈을 떼어 먹는데 그런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탓이네!”

선생님, 어찌 선생님 탓이라고만 말씀하시는지 저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내 탓이지. 자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내 탓이 아니겠는가!”

이 마지막 말에야 제자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나의 탓이었구나!”

   

결국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 빵과 포도주는 우리 자아의 돌로 그분을 깨어버려서 그분이 그렇게 부서지고 으깨져서 죽으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만듭니다. 내 안에 있는 자아가 그분을 죽였음을 베드로처럼 탕을 치며 깨우치고 뉘우쳐야 합니다. 그런 밭이 참으로 좋은 밭인 것입니다. 그런 밭만이 선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체와 성혈이 바로 우리 밭에 뿌려지는 씨인데, 그 열매는 바로 그 씨를 통해 내 자아가 부서지는 것입니다. 만약 성체를 영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계속 판단하고 있다면 아직은 선택받지 못한 상태인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돌은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간음한 여자를 앞에 놓고 우리는 각자 자아의 돌을 들고 있습니다. 그 돌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손가락이 우리 죄를 지워지지 않는 책에 기록할 것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혹은 오늘 복음에서의 딱딱한 길이나 돌들은 우리 자아를 나타냅니다. 돌은 나의 주인인데 참 주인이 그분이 되게 하는 사람만이 비유의 의미를 깨닫고 선택된 백성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모든 것이 당신 탓이라고 하시며 결국 우리의 탓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씨앗이 되어 우리 마음 안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 죽는 역할을 통해 결국 그분을 죽인 것이 나의 탓이었음을 깨닫게 되면 내 자아가 죽어 그분이 나의 참 모퉁이 돌이 되시는 것입니다.

내가 돌을 든 사람이 아니라 만인 앞에 가장 큰 죄인으로 무릎 꿇려지지 않는다면 그분은 이미 돌을 들고 있는 우리를 지켜주시는 참다운 모퉁잇돌, 성채가 되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내 안에서 또 죽게 만들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 장본인, 나쁜 사람임을 절대 잊지 않도록 합시다.

   

길어서 죄송합니다. 8월 이전에 매일 묵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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