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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심과 책임감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4 조회수1,118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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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4.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이사1,10-17 마태10,34-11,1


 

중심과 책임감


 

누가 참 사람입니까?

사람이 되는 일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아마 평생 일이 사람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하여 우리가 수도원에 들어온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to do)'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to be)'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단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복음에서 찾아낸 것은 중심과 책임감입니다.

중심이 있고 책임감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주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심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7).

 

그 누구보다도 주 그리스도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중심 부재보다 더 큰 피해는 없습니다.

 

정체성의 부재와 직결되는 중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그리스도의 사람'이 바로 우리의 신원입니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마라."(RB72장)

 

이번 수도서원 50주년 금경축을 지내신 왜관 수도원 김영호 요아킴 수사님의 상본에 적힌 성구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신,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바로 허례허식을 싫어하시는 하느님의 심중을 그대로 들어내는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이사1,11-14).

 

나를 사랑한다면, 내 마음을 알아 준다면 제발 이런 헛된 경신례는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주님인 내가 싫어하는 일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이 빠져버린, 내 뜻과 무관한 제멋대로의 경신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해도 이런 상태에서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8).

 

주님을 사랑하여 중심에 모신 이들임이 검증되는 것은 중심이신 주님을 따를 때입니다.

생각없이 그냥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제 십자가를 진, 철저히 책임적 존재가 되어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제 고유의 십자가입니다.

이 제 십자가를 내려 놓고 사람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책임적 존재가 되어 중심이신 주님을 항구히 따를 때

비로소 참 나의 실현이요 구원입니다.

제 십자가의 책임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웃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 역시

참된 경신례의 정신을 사는 것이자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1,16-17).

 

이런 사랑과 정의의 삶이 채워질 때 비로소 참된 경신례요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책임적 존재의 사람이 됨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온다는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사실 이런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그 누구도 소홀히 대하지 않고 환대합니다.

 

이런 이들을 향해 시편저자는 화답송 후렴을 통해 말합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ㄴ).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은

우리의 '중심'이신 주님과 각자의 '제 십자가'를 새롭게 확인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시편130,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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