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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한 사랑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6 조회수1,212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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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6.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사10,5-7.13-16 마태11,25-27


겸손한 사랑


"사랑을 하며는 예뻐져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하면 저절로 예뻐져 성형수술도 화장도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빛나는 예쁜 얼굴로 당장 알아 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도 배워야 하는 평생 공부에 속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나에겐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사랑 전부라는 고백입니다.

더불어 생각난 코린도 전서 13장 말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1코린13,4-6).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공동번역의 이 사랑의 말씀에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겸손한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사랑이 익어가면서 이런 이웃 사랑의 열매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감사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아버지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습니다.

짧은 찬미와 감사기도에 '아버지'란 정다운 호칭이 여덟 번이나 나옵니다.

아주 가까이 뵈오면서 아버지께 말하듯이 기도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 졌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도 있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사랑으로 겸손해져 마음 비워진 '사랑의 철부지'들에게 활짝 계시되는

하느님의 나라요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와 사랑의 일치와 함께 가는 겸손한 사랑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사랑뿐이 답이 없습니다.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아버지와 독보적인 사랑관계에 있는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매일 주님의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의 겸손한 사랑에 필수적 도움이 됩니다.


복음의 예수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1독서 이사야서의 군사적 강대국 아시리아 임금입니다.

안하무인의 교만으로 하느님을 잊은 자들,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모든 악덕의 어머니요 재앙이자 불행이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거울'에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자기를 알 수 없어 교만입니다.

말 그대로 불통의 교만에는 약이 없습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뽑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주님은 이처럼 제 분수를 잃은 교만한 자들에게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예언자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하느님의 심판이라기 보다는 교만한 자 스스로 자초한 재앙입니다.

겸손한 사랑 자체가 영약(靈藥)이요 영육의 건강에 우선적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겸손한 사람이 되어 하늘나라의 신비를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의 온 삶이 주님께 바치는 영원한 사랑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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