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다가 낟알을 까먹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본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율법을 이야기하며 트집을 잡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정말 율법에 나온 조항을 어겼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을까요?
과연, 몇 퍼센트의 바리사이들이 613개의 율법 조항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고 있었을까요?
어느 누가 미워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미워집니다.
그가 잘했던 못했던 모든 것이 미워집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지닌 또 하나의 약함입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이 싫었던 것입니다.
낟알 몇 움큼이 없어지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더욱이 율법 조항에 어긋나는 듯 한 일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가 싫었고 그를 따르는 무리가 싫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러한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에 걸맞은 논리를 찾으려 합니다.
대부분 빈약한 논리들입니다.
안식일이라는 틀에 사람을 끼워 맞추려는 듯한 논리입니다.
사람이 돈을 위해 있는 듯한 논리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잘못된 일을 비판해야 합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긍정을 위한 부정이어야만 합니다.
율법 조항 613개가 많다고 하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의식할 수조차 없는 수없이 많은 복잡한 법과 규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모든 법과 규제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과의 조화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모든 생명체와 자연이 그 존재 이유에 맞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모든 도리의 기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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