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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8 조회수1,23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Mt.12,7)
 
 
제1독서 이사 38,1-6.21-22.7-8
복음 마태 12,1-8
 

독일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945년 4월 9일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 집행을 위해 간수가 “수감자 본회퍼, 준비하고 떠나자!”라고 말했을 때 본회퍼는 감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이지만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 시작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세상의 기준보다는 주님께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시의 만족만을 원한 것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삶을 아쉬워하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세상에 대한 불안감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만이 최고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서 바리사이들이 난리가 났지요.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일하신 뒤에 쉬셨으므로 우리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쉰다는 것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안식일 법을 지켜야 한다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병자들을 보고서도 외면하는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마치 안식일을 폐지하러 온 사람처럼 비쳐졌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율법을 폐지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을 찬양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단순히 쉬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쉬게 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누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까? 바로 인간을 위한 사랑 때문에 제정하신 것이고, 그래서 인간이 항상 일순위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정도로만 생각하고,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단죄하려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시되고 대신 덜 중요한 원칙만이 최고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바로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사람을 향한 사랑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원칙이었으며, 이를 통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원칙이 될 것입니다.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에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톨스토이).


 
용서하는 용기(차동엽, '뿌리 깊은 희망' 중에서)

야망이 있는 한 젊은 회사원이 자기 회사에서 수억 원의 공금을 빼돌려 달아날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이런 사실은 곧 적발되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냐는 사장의 질문에 젊은이는 '그렇다' 고 답했다. 젊은이는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받아야 할 법적 처벌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네를 용서하고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순간 젊은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입니다, 사장님.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사장이 다시 말했다.

"좋네. 나는 자네에게 일말의 책임도 묻지 않겠네. 가서 일하게."

돌아서려는 젊은이에게 사장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참 한 가지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네.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 갔다가 관대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야.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날세. 한 때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지... 그리고 자네가 받은 용서를 나도 받았다네."

사람이 기준이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원칙을 세우시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도 사람을 기준에 두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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