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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1 조회수1,251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7월 20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At the judgment, the men of Nineveh
will arise with this generation and condemn it,
because they repented at the preaching of Jonah;
and there is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here.
(Mt.12,41)
 
 
제1독서 미카 6,1-4.6-8
복음 마태 12,38-42

요즘에는 극장이 모두 좌석제이기 때문에 영하 중간에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지요. 하지만 옛날에는 자신의 고정 자리도 없었고 영화 중간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들어와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극장 안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이면서 들어갈 때가 많았지요.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암흑을 체험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 암흑의 순간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조금만 기다리면 주위에 익숙해지게 되고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 앉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빛은 항상 어둠을 이겼습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지금 밖이 무척 어둡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빛이 있는 밝은 공간에 있습니다. 이때 방 안의 창문과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 밖의 그 캄캄한 어둠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 방을 어둡게 만들까요? 오히려 창문과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빛으로 그 근처가 환하게 될 것입니다.

또 반대로 생각해보지요. 이제 여러분이 어두운 공간에 있습니다. 바깥에는 환한 햇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여러분 방의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보십시오. 내 방의 어둠으로 인해, 창문과 문 근처가 어둡게 변할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와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 만나면 언제나 이러했습니다. 즉, 항상 빛이 이겼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어둠인 악이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악에 기울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엉뚱한 힘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힘이 진정한 힘이라는 착각 속에 살다보니, 빛과 어둠이라는 삶 안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금만 주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주님을 보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본다면 곳곳에 주님의 손길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표징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향해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세상의 기준에 적합한, 즉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만을 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과거에 하신 말씀을 똑같이 반복해서 말씀하시지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무엇입니까? 요나의 말 한마디로 이민족이었던 모든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갔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 자체가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표징을 주님께 청해야 할까요? 또한 어디에서 주님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까요?

주님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표징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나아가는 사람에게 너무 먼 길은 없다. 인내심을 갖고 준비하는 사람이 도달하기에 너무 먼 명예는 없다(장 드 라브뤼예르).


 

나를 부풀어 있게 하는 것들....

장거리 화물차 기사 두 명이 화물차를 운전하다 육교 밑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차가 육교 밑을 통과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화물차에 실려 있는 짐의 높이가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잘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시도해 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화물차의 10센티미터 정도가 육교에 걸리는 것입니다.

두 기사는 화물차에서 내려 난처하게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길로 가자니 시간이 부족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이때 어떤 젊은이가 다가와 “제가 해결 방법을 압니다.”하고 말합니다.

기사들은 도저히 방법이 없는데도 있다고 말하는 이 젊은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방법이 도저히 없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러자 이 젊은이는 자신 있게 말해요.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내면 됩니다. 그러면 통과할 수 있어요.”

맞습니다. 타이어의 바람을 빼면 차 높이를 10센티 정도를 낮출 수 있으니 통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우리 자신도 이렇게 부풀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해 봅니다. 욕심, 이기심, 판단, 단죄,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부풀어 있어서 주님께서 제시해주신 길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나를 부풀게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들을 빼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길은 내 안의 바람을 빼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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