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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시찬 신부님 성이냐시오 영신수련 제22강 선택의 확정절차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4 조회수901 추천수6 반대(1)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유시찬 신부님 성이냐시오 영신수련 깊은 데에 그물을 쳐라

 

제22강 선택의 확정절차

 

■ 오늘 이야기 ... 하느님의 뜻에 대한 확증과 확신

예, 우리가 중대한 문제들을 결정을 내려야 될 때 곧잘 이런 의문이 들죠.

이게 진짜 맞는가? 이게 정말 하느님의 뜻일까? 이게 행동으로 옮겨도 될까?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이라든지 곤란에 부딪치는데 우리는 이것을 다소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은 하느님의 뜻을 확증하고 확신하는 절차라고 이야기를 하죠. 우리는 이런 확신

절차에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내적 확신에 가득찬 가운데 중요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점에 대해서 우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봤으면 합니다.

 

■ 시작 기도...

좋으신 예수님, 당신을 따라가는 이 여정에 저희들 지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힘과 용기

를 더해 주십시오. 특별히 당신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찾아나서고 따라가고

자 하는 저희들에게 지혜와 용기와 힘을 더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뜻을 찾아나서는 것이 저

희들에게 부담이 되고 어려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저희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또한 거기에서 저희들이 삶의 의미를 올바르게 찾아내며 걸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더해 주시시오. 좋으신 당신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선택의 확증
    - 확증이란 의지의 확증이 아니라 판단의 확증
    - 선택의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기 전의 확증절차

* 이냐시오의 영적일기
    - 선택의 확증과 관련된 고려할 점
       1) 확증은 셋째시기에만 특유한 것인가?
       2) 확증을 구하는 게 필요한가?
       3) 반드시 그런 확증을 받아야만 하는가?
       4) 어떤 것이 확증의 자료가 될 수 있는가?
       5) 확증은 언제 끝나는가?

    - 선택의 잠정적 결론에 도달한 후의 확증절차
       1) 권위에 의해 하느님의 뜻에 대한 판단이 확증될 수 있는가?
       2) 식별에 의한 결정을 실행에 옮길 때의 환경이 좋은가의 여부에 의해 확증이

           가능한가?
       3) 식별과 결정을 통한 실행의 결과 의도된 목적을 달성했느냐의 여부에 의해

           확증될 수 있는가?

2. 선택의 세 시기의 상호관계
    - 각 시기의 고유성
    - 각 시기의 독립성
    - 각 시기의 보충성

3. 선택에 대한 확신
    - 확신절차는 진리에 터잡은 사랑의 문제인 의지의 단계
    - 확신의 원천은?

* 모든 선택 과정은 사랑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예, 오늘 이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선택하는 이 부분은 오늘 강의로서 매듭을 지어야

되겠다 싶은데 그동안의 이렇게 경로를 보면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가?

여기에 대한 개념 설정을 하고 그다음에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서는 선택 작업을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

 

#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한 조건: 성령에 대한 협조와 의탁

 

성령께 대한 협조 그리고 성령께 대한 신뢰와 의탁. 이런 이야기를 했죠. 이 전제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지난 시간에 했던 것처럼 구체적으로 선택의 세 시기에 대해서 쭉 살펴

봤죠.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은 선택 작업에 들어가는데 첫재 식, 둘째 시기, 셋째 시기,

영적인 움직임이 있는 시기랑, 영적인 움직임이 없는 셋째 시기랑 이렇게 한 거예요.

 

# 선택의 세 시기:

   1) 의심 없이 분명한 식별 2) 영적 움직임을 통한 식별 3) 이성으로 식별

 

여기까지 오는 사람도 드물죠. 그냥 그때 그때 기분내키는 대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고 막 움직이지. 생각 조금 해 보고. 이런 식의 구체적인 선택작업을 하기도 힘든데 여기

까지 왔다 이래 가지고 아, 이제 하느님의 뜻을 다 찾았고, 선택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은 좀 오산인 거예요. 아직도 큰 절차가 두 개가 더 남은 게 그다음에 확증절차.

 

■ 이번 시간 ... 선택에 대한 확증와 확신

 

학증, 확실하게 전한다 하는 확정이 아니고 확실한 증거. 보다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는

작업. 그 절차를 걸져야 되는 거예요.

 

# 확정(確定)이 아닌 확증(確證)

  * 확증: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때 더 확실한 증거를 찾는 절차

 

요즘은 영어도 많이 쓰고 그러죠 그래서 특히 뭐 비행기표 같은 거 예약하고 나면은 컴폼한

다 이런 이야기들 잘 하죠. 영어로 하면은 comfirmation(컴포메이션) 영어라서 그렇긴 한대

컴폼 이러면은 확실하게 다지다. 견고하게 하다. 그렇다면은 이걸 성사에다 같다 붙이면 어

느 성사가 되겠어요? 예, 견진성사를 컴포메이션이라고 그러죠. 그런 식으로 세례 받은 사

람을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군사로 양성시켜서 내보내는 것. 어쨌든 그런 하느님의 뜻을 식

별하고, 선택하는 작업에 있어서도 확실하게 증거를 찾는.

 

법률 용어로 치면은 보강 증거를 찾는다. 범인을 잡았는데 자백도 받아냈죠. 내가 이 여자를

죽였는데요. 자백도 다 받아냈는데 그래서 확실히 범인 같은데 결정적인 증거, 물증이 없는

거예요. 목을 졸라 죽였는데 그때 사용했던 보자기로 졸랐다고 했는데 그 보자기를 못 찾겠

는 거예요. 어쨌거나 좀 더 확실한 증거 자료를 찾는 절차. 그게 있고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있는 것이 확신 절차. 여기까지 가야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작업이 완결 되는 거

예요.

 

# 확실한 증거를 찾은 후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작업이 완결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의 시기를 통해 가지고 그게 첫째 시기가 됐든, 둘째 시기가 됐든, 셋째

시기가 됐든 여기에서는 증거자료를 확보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은 돼요. 여기에서 하느님

의 뜻이 이걸 것이야 하고 추측한, 그래서 잠정적인 하느님의 뜻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거죠.

 

# 선택의 세 시기까지는 하느님의 뜻을 잠정적으로 확인한 단계

 

굳이 퍼센트를 한다면 70-80%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고 그럴까? 그런데 여기에서 그다음

에 확증절차 좀 더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90% 이상으로 거의 95% 막 이런 식으로 끄집어 올

리는 거예요. 그래서 더더욱 더 하느님의 뜻임에 틀림없다 하는 것을 만들고 그다음에 최종

적으로 봉인하는 확신.

 

# 확증과 확신을 거쳐 하느님의 뜻을 최종적으로 선택

 

그래서 여기까지는 우리가 쭉 봤으니까 오늘 봐야 될 부분이 이 확증, 컴포메이션 절차하고

확신하는 것 이 절차에 대해서 좀 봐야 되죠. 이 확증 하는 것. 좀 전에 확실한 증거를 찾는다

이랬던 것처럼 여기에서 확실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내 의지를 더욱 더

확실하게 한다. 이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 판단의 문제인 거예요.

 

# 확증이란 의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아닌 사실에 대한 판단을 확실하게 하는 것

 

판단의 확실성. 이게 하느님의 뜻일거야. 그렇게 증거 자료를 수집해 가지고 사실 판단을

하고 있는데 그 판단에 대한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컴포메이션(확증) 절차다 하는

거예요. 의지의 문제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이 의지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선택작업 시작을 할 수 있겠죠.

 

성령께 대한 의탁, 성령께 대한 협조 이런  전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랬죠. 그게 없으

면은 선택 작업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다음에 또 선택작업을 첫째 시기, 둘째 시기, 셋째 시

기를 쭉 걸치면은 여기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꼭 찾고 그것을 살아내고야 말리라 이런 어떤

강한 의지, 이게 없으면은 선택의 세 시기도 거치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는 시작할

때나 중간이나 끝나고 나서나 의지적인 문제는 계속 요청되는 것이다.

 

그거는 당연히 있어야 되고 이 확증 절차에서 요구되는 것은 판단에 대한 확실성이다. 어느

정도 이것을 확실하게 해야 되느냐 하면은 이냐시오 성인의 영적 일기가 아주 중요한 예가

될 수 있어요.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이 절대 청빈. 이 예수회가 절대 청빈의 문제를 놓고 고

민을 하게 되고 ?이냐시오 성인께서 이 점을 식별을 하시죠.

 

아시다시피 우리 수도자들 같으면은 삼대 서원을 발하죠. 청빈, 정결, 순명. 이 삼대 서원을

발하는데 그 청빈의 내용은 수도회들 마다 조금씩은 다른 거예요. 가난하게 살겠다. 그러니

까 수도자들인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재산을 소유할 수가 없죠. 교구 사제들하고 다

른 점인 거예요. 그런데  수도자들 개인이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대. 수도자들

같으면은 수도회 자체도 재산을 소유하지 말아야 될 것인가? 이점에 있어서 수도회들 마다

좀 다른 거예요.

 

예를 들면은 사도 바오로, 바오로 사도도 잘 아다시피 바오로 사도는 천막 장수였죠.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당신이 직접 땀흘리면서 노동해 가지고 번 돈으로 사도직을 행

하셨죠. 그래서 늘 그러셨죠. 나는 복음을 전하면서 여러분들한테 폐 한번 끼친 적이 없다.

그러면은 사도 바오로의 영성을 쫓아서 살아가고 있는 수도회들, 우리나라 같으면은 성바오

로 딸 수도회, 책 많이 내는 바오로 딸 수도회나 샬트르 바오로 수도회. 이런 수도회들 같은

게 바오로 영성을 따라 살죠.

 

그런 경우에는 개인은 재산이 없어도 되지마는 수도회 자체로는 재산이 많이 있어야지, 그래

야 그 돈을 가지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저희들 예수회는 탁발 수도회예요.

쉽게 말해서 거지 수도회. 동냥을 얻어 가지고, 동냥을 받아서 그 받은 것 가지고 일을 해라.

그래서 아무도 우리한테 기부를 안 해 주면은, 동냥을 안 해 주면은 할 수 없죠. 손가락 빨면

서 하다가 배고파서 쓰러지면 그냥 그대로 죽어버려야지.

 

그래서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그때 그때 살아가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인가? 하느

님께서 우리를 이런 식으로 살아내는 생활 양식을 이런 식으로 택하게 끔 부르시고 계시는

가? 이점을 가지고 식별 작업을 하셨고 그 식별한 결과를, 식별 과정을 영적 일기 이래 가지

고 남겨 놓으신 거예요.

 

# 절대 청빈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기 위한 이냐시오 성인의 영적 일기

 

그런데 이 식별 작업을 하는데 이냐시오 성인께서 40일 꼬박 걸린 거예요. 그런데 이 40일

을 다시 분석을 해 보면은 첫 단계가 10일, 그다음이 7일, 그다음이 22일, 그다음에 마지막

하루. 이래 가지고 40일인 거예요. 이 말은 처음에 이 10일 동안에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식

별 작업을 끝내시는 거예요. 하느님의 뜻이 뭐다 하는 것을 선택의 세 시기를 다 거치시면서

하느님의 뜻이 이거구나 하는 것도 알고, 확증절차까지도 다 거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 하느님의 뜻이 이거로구나 하고 이제 결론을 내야지. 마지막으로 확신에 들어가

시면서 이 작업을 끝내야지 하는데 열 하루째 날 유혹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거예요. 그때 예

수회가 운영하고 있는, 관리를 하고 있는 조그마한 성당이 하나 있었다고 그러죠.

 

그런데 그 성당을 유지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 예컨대 요즘 같으면은 전기세, 수도세, 미사

드리고 이럴려면 제병 사야 되고, 미사 주도 사야 되고 이런 것. 고정도의 유지 관리비 정도는

수도회가 자기 재산으로 가지고 있어도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쓱 올라오자. 아, 분별해

야 되겠다. 이래 들어가신 거죠. 그것까지도.

 

그리고 7일을 쓰셨는데 그다음에 18일찌가 되죠. 18일째 그날도 이냐시오 성인은 영적 일기

에 적어 놓은 거 보면은 얼마나 이 40일 동안에 신비 체험들을 많이 하시는지. 그러니까 그

때는 사제가 혼자 제의 입고 혼자 이렇게 벽 보고 미사 드리고 이런 거 예사로 하죠.

 

그렇게 미사를 드리고 하시는데 제의를 입을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고, 그리고 미사 드

리는 동안에는 눈물을 많이 흘리고, 어떤 때는 많이 울었다. 울었다. 울었다. 많이 울었다.

이런 이야기가 엄청 나오죠. 의사로부터 경고를 받는. 계속 이런 식으로 울어대면은 실명할

위험이 있으니까 울지 마라. 그러는 데도 이게 제어가 안 되죠.

 

예수회가 걸어가는 행동 양식으로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니까. 절대 청빈 이 문제는. 이걸 내

가 식별하는 동안에 여러분들도, 예수회 회원들한테 이런 지향으로 미사를 드려라. 이런 당

부도 하시고, 성인 스스로 계속 미사드리면서 기도하시고. 그러면서 식별 작업을 해 오시고

있죠. 그런데 이 18일 째 유혹이 슬그머니 타고 들어와서는 그 유혹 때문에 7일을 소비하고

나셨는데 그날도 기도할려고 이제 앉았는데 바깥이 너무 소란스러운 거예요.

 

너무 소란스러워서 기도가 안 될 정도인 거예요. 나가셨죠. 기도를 중간에 관두고. 나가서

보니까 어느 수사님이 뭐 일이 있어 가지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혼내

시죠. 조용히 하라고. 내 중요한 작업 하는데 기도하게 끔.

 

그러고는 혼을 내시고 딱 들어오셨는데 다시 기도해야지 하고 딱 앉는데 그때 막 그대로

냐시오 성인의 가슴을 치고 들어 온 것이, 내가 지금 예수회의 문제를 놓고 이거는 예수회

기보다는 예수님 당신 자신의 일, 혹은 하느님의 일을 놓고  너무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식별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그 좀 떠드는 거 그걸 내가 소화를 못

시키고, 참지 못하고 기도를 중간에서 털고 일어나버릴 정도로 내가 흔들렸다.

 

하느님께 뭔가 송구스러운 짓을 저질러 버렸다. 하느님 뵐 면목이 없다. 이래 돼 버린 거예

요. 그러면서 22일 동안이나 긴 기간 동안을 하느님과 화해하는 작업, 하느님과의 화해 속

에서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완전하게 찾아내려고 진짜 돌다리도 두드리고, 두드리고. 놀라

운 체험도 엄청 많이 하세요. 이 기록을 보면은 이냐시오 성인 스스로가 이렇게 표현하시는

게 한 10가지 체험을 하시면은 1가지쯤 표현할까, 말까 이 정도 스타일이시죠.

 

엄청나게 큰 많은 그런 신비체험들을 하시고 그러는 데도 불구하고 이 작업이 오랫동안,

래서 이렇게 보면은 절대 청빈에 대해서 하느님의 뜻을 거의 다 읽어내신 것 같은데 뭔가 그

럼에도 부룩하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듯한 미지근한 구석을 느끼시

는 것 같고, 그래서 거듭거듭 기도 중에 식별 작업에 머무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의식 성찰하다가 탁 알아차리시죠. 내가 그동안에 너무 하느님의 뜻, 하

느님의 뜻, 좀 더 명확한 뜻, 좀 더 명확한 뜻 이러다 보니까  오히려 유혹에 걸려 넘어져 버

린 것 아닌가? 이 생각이 불쑥 들어오면서 그동안의 전체 과정을 주욱 보시는 가운데 아차,

내가 속았구나 하시는. 악신의 꾐에 넘어가 버렸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시는.

 

그러면서 이 전체에 대한 식별과 선택 작업을 종지부를 찍죠. 그러면서 이렇게 보시면은 이

미 첫 단계 이 10일 동안에 힜을 이 때가 완전히 식별 작업 끝나버렸던 거예요. 끝났는데 그

다음에 악신이 슬그머니 틈타 들어오면서 깜빡하시는 가운데, 그러니까 이런 것도 우리가

기본적으로는 성실하고 주도 면밀하고 이런 것들이 대단히 바람직하고 좋은데 또 악신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은 그런 기질을 이용해 가지고 후벼판다고 그럴까? 좀 더, 좀 더

이렇게 하면서 계속 몰아부쳐 버리는.

 

그러니까 정말 이렇게 맑게 깨어 있으면서 중(中)을 딱 잡고 있지 않으면은 넘어가기 십상

인 거예요. 이때만 해도 진짜 이냐시오 성인께서 회헌을 쓰실 때, 예수회 회헌에다가 절대

청빈을 못 박을 건가, 말건가? 그것 때문에 식별하셨던 거 거든요. 이럴 때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은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분명하게 찾아야 된다. 이것도 참 중요한대 한편으

로는 그저 기도 중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이렇게 들었다. 이게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다. 이

런 식으로 막 몰아붙이면은 좀 너무 경솔하고 좀 가볍죠.

 

우리가 범하기 쉬운 잘못은 이런 잘못이 오히려 많고 그런데 마찬가지로 또 한쪽에서는 너

무 하느님의 뜻을 진짜 명명백백한 하느님의 뜻 이러다 보니까 마치 무슨 이메일이라도 와

가지고 "나는 네가 결혼하기를 원한다." 아이디 보니까 God. 이래 가지고 하느님으로부터

그런 메일이라도 수신이 돼야 ^^*~~ 비로소 아, 하느님의 뜻이구나 하고 끝장 내려고 하는

것. 그것도 역시 우리는 경계해야 될 몫이다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결혼을 할까, 말까? 이러면서 막 3년, 5년씩 끌고 있고, 수도회에 들어갈까, 말까

이러면서 막 몇 년씩 끌고 있고. 주위에서 볼 때는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 보면은 당

신은 지금 수도 성소가 있는 것 같은데 수도회에 오는 게 좋겠다. 그러는 데도 뭐 "아이고,

대학원 공부 지금 하고 있는데 이거 마치고요. 그다음에 막내가 하나 있는데 막내 장가 가

는 거 보고요. 어머니 내년이면 회갑인데 회갑 끝내고요. 이러면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그러면서 하느님의 뜻이 훨씬 더 분명하게 손에 잡혀야 움직이겠다 하는 이거. 적잖은 경우

에 유혹이죠.

 

# 하느님의 뜻을 신중하게 식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뜻만 바라고 행동을

                                미루는 것도 유혹일 수 있다

 

분명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고대로 또박또박 걸어가는 이 모습도 대단히 아름답고

좋겠지마는 어떤 면에서는 그냥 내가 지금 행동을 취해야 될 때 성실하게 식별하고 행동 취

는 거예요. 취했는데 좀 걸어가다 보니까 하느님의 뜻이 아니야, 이쪽으로 가라는 거야.

게 또 성실한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으면은 거기로 또 이렇게 가고, 이래 가다 보니까 또

아니어서 이렇게 가고, 이러는 것을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더욱 더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일편단심 민들레 보다는 그때 그때 상황을 분별하고 거기에 늘 깨어서 이리저리 쫓아가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은 이런 확증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가? 꼭 해야 되는가? 진

짜 그런데 이런 확증 같은 거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가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거는 셋째 시기에서만 좀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첫째 시기와 둘째 시기에서는 영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분별을 하니까 하느님의 뜻에 대해

서 분명하게 뭔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데 셋째 시기는 합리적인 이성에 기반을 두고 판

단하다 보니까 오판들을 벌일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여기에는 증거가 더 필요하다. 그렇

게 이야기 할 건가? 꼭 셋째 시기 때만 컴포메이션, 확증 절자가 필요하고 첫째, 둘째 시기

는 필요하지 않은가? 이래 얘기하면은 그거 아니다.

 

# 모든 선택에는 확증 절차가 필요

 

첫째 시기나 둘째 시기의 체험이 일어났어도 역시 이 보강 증거들은 필요하다 하는 거예요.

확증 절차는 걸쳐야 된다. 셋째 시기 때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얻어야만 되

는가? 예, 이냐시오 성인은 적어도 이 확증 절차는 반드시 얻어야 된다. 이 확증에 대한 그

싸인들을 얻어야 된다고 보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은 그 확증을 얻으려고 계속 노력을 했는데  못 얻으면 어떻게 되냐? 그럴 때

는 충분히 애를 쓰고 났는데도 못 얻으면은 세 시기를 통해서 생겨난 결론을 그 잠정적인

결론을 하느님의 뜻으로 간주하면서 그렇게 옮겨가야 될 것이다.

 

# 확증을 찾아봤지만 얻지 못했을 때는 세 시기의 선택을 통해 얻은

                                    잠정적 결론을 실행

 

확증을 못 얻었다고 해 가지고 꼼짝도 안 하고 그냥 스톱 해가 있을 것이 아니다 하는 거예

요. 그런데 그렇다 해 가지고 한 두 번 체험만 떡 하고 확증 같은 거 없어도 돼. 이러면서

넘어가서도 안 된다. ?필요하다. 그러면은 어떤 게 있으면은 우리는 확증을 얻을 수 있는가?

 

■ 어떻게 확증을 얻을 것인가?

 

이 확증을 얻기 위해서는 첫째, 둘째 시기의 체험이 강하게 일아나도 좋고, 셋째 시기의 체

험이 강하게 일어나도 좋고. 무슨 소리인고 하니까 셋째 시기에 의해서 결론을 딱 냈어요.

합리적인 분별을 통해서. 그런데 그다음에 그 결론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영적 위안

을 깊게 맛봤다. 아, 정말 나는 결혼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 정말 하느님께

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일이구나.

 

그 생각이 들면서 큰 위로를 맛본다든지. 이러면은 그런 영적 위안 이런 것들이 바로 보강

증거, 확증의 자료가 되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은 또 첫째, 둘째 시기에 의해서 결론을 냈

어요. 영적 위안 이런 움직임들을 통해서. 그런데 기도해 나가다 보니까 확증 절차에서 더

욱 더 강한 확신 그런 위안 그런 것들을 쭉 체험을 하게 되면은 그것도 괜찮다 하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은 또 이런 첫째, 둘째 시기를 통해서 결론을 냈다면은 셋째 시기, 머리로만 한

번 따져 봤더니 역시 이런 좋은 점들이 있고, 저런 어려운 점들이 있고, 고려해 보니까 역시

이게 더 맞구나. 이런 식으로 나오면은 그런 것도 역시 보강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그게 영적인 위안이 됐든, 새로운 사실에 대한 어떤 발견이 되었든,

합리적인 판단이 되었든 어떤 것이라도 기존의 결과를 더욱 더 확실하게 보강해 주는 자료

들이면은 어떤 것이든지 괜찮다 하는 것.

 

# 영적 위안이든, 합리적 판단이든 기존의 결론을 확실하게 보강해 주는 자료로 확증

 

그래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쭉 우리는 확증 절차를 거져 나가야 된다. 그런데 이런 확증 절

차를 거쳐 나갈 때 우리가 좀 봐야 될 것은 이 잠정적인 결론을 내고 난 다음에 일어난 사건

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선택의 세 시기를 걸쳐서 그다음에 확증 절자에 이르렀죠. 그다음

에 이제 확신을 갈 건대, 확신으로 가기 전까지를 확증 절차 여기까지르 전부 이거는 어쨌든

잠정적인 결론인 거예요. ?100%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라고는 아직은 이야기 할 수 없는.

 

확증 절차에 오면은 훨씬 더 개연성은 높아졌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잠정적이다.

엄밀히 이야기 하면은. 그런데 이런 확증까지 일어난 다음에 그다음에 어떤 변수들이 생겼

을 때 이 변수들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이 맞다. 아니다 이런 식별들을 할 수 있는가?

 

# 확증 후에 생기는 변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대표적인 예가 교회의 합법적인 권위에 의해서 그 결정이 부인되어 버릴 때. 그러면은 그것

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 예를 들면은 어떤 신부님이 아, 본당에 오셔가지고 새로운 사도직

으로서 아, 이런 걸 뭘 새롭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식별 작업을 깊게 했더니 아, 하느님

께서 원하시는 것 같고 좋은 거예요. 그래서 아, 이것을 주교님 허락을 받아 가지고 해야 되

겠다. 주교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주교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주교님께서 야, 그거는 우리 교구에서 할 일이 아니야.

그걸 니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보는데 내가 볼 때는 그거 아니야. 이래 가지고 부인해 버렸다.

그래서 일을 못하게 됐다. 그러면은 그런 식으로 교회의 합법적인 권예예요. 그 권위에 의

해서 부인되면은 그러면은 그전에 신부님이 하신 식별과 판단 이런 것들은 하느님의 뜻을

잘못 읽어드린 것이냐 하면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까, 주교님이라든지, 교황님이라든지, 교회의 권위도 오판할 여지는 있다.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데 있어서 오판할 여지도 있고, 더 나쁘게는 어떤 점에서는 또 어떻

게는, 어떤 사적인 목적이 들어가면서 일부러 부인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을 고려를

한다면은 식별을 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한 것 하고, 이것을 교회의 합법적인 권위가 인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하고는 별개의 문제인 거예요.

 

그래서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부정되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식별하고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하는 거예요.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주교님이 그랬다 해 가지고, 주교님 말이야,

평소에 기도도 안 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 순엉터리로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막 이야기할 수는 없는 문제죠. 진짜 본당 사제가 혹은 신자가 완전히 잘못 읽어드렸

을 수도 있죠. 그때 그때 봐야 될 문제지마는 어쨌거나 두 개는 그런 식으로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다.

 

그다음에 뭔가 일을 할려고 하는데 여건이 어렵게 돌아가는 거예요. 환경이, 상황이. 그러면

은 이거는 역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데 영향을 미쳐가지고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할

것인가?

 

사목위원회에서 야, 요즘 가출 소녀들이 많은데, 이 뭐 어린애들이 그냥 막 미혼모가 돼 가

지고 막 방황하고 이러는데 그것을 우리 본당 차원에서 사도직으로 뭐 좀 해 보자. 그런 애

들을 돌봐서 집을 하나 마련해가 하자. 이랬더니 막 사목위원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거

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 우리 본당 옆에 조그마한 집이 마치 매물로 나왔고 그거 우리

사면은 그정도 할 수 있고 그러니 좋겠다. 하자.

 

그래 가지고 막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은 하기고 결정을 탁 본 거예요. 아이, 그래 가지고는

이제 딱 그 집을 매매를 할려고, 살려고 떡 갔는데 갑자기 주인이 막 두 배의 값을 부르면서

그 돈 안 내면 자기는 팔 수 없다고. 이러면서 상황이 어려워져 버린 거예요.

 

그러자 반대 의견을 내던 사람들이, 그거 봐라. 이게 만약에 하느님의 뜻이라면은 여건이

잘 풀려갈 수 있도록 여건이 좋아져야 될 것 아니냐?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하는데 이런

으로 상황이 더 어렵게 풀릴 수가 있느냐?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그런 식으로 볼 수 없죠.

 

오히려 역설적으로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더더욱 더 하느님의 뜻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이야

기 할 수도 있죠. 악신이 하느님의 뜻이 제대로 펼쳐지는 것을 훼방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덫을 놓는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여건이 어려워지는 것 이걸 가지고

멀쩡하던 여건이 결정하고 나서 실행에 옮길려고 하는데 더 어려워졌다 이래 가지고 하느님

의 뜻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잘못 식별했다라고 이야기 하면은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실행에 옮겼을 때, 다 결정을 해 가지고 옮겼는데 본래 의도했던 목적대로

못하고 실패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아까 그런 얘기를 이래 가지고, 가출 소녀들도 이렇게 좀

모으고 이래 가지고 뭘 이렇게 했는데 한 1, 2년 하다가 뭐 이런 저런 이유로 해 가지고 그 사

도직이, 그 소녀들을 돌보고자 하던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데 되고 완전히 문 닫아  버린

거예요. 그러자 이제 그때 반대표를 던졌던 사람들이, 그보라고 하느님의 뜻이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겠냐고. 하느님의 뜻이 아니니까  결국은 이럴 줄 알았다고 고함질러 대면은

그것 역시 바른 판단인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 사건이지 않느냐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사건만 딱 놓고 보면은, 그 시점에서 마치 예수님은 실패하신 것처럼 보이죠.

자들도 막 도망가고, 사람들이 막 풍지박산이 나고, 흔들리고. 그런데 그게 다시 일어서고,

뿌리내리고, 성장해 나오는. 이천 년이란 세월을 지금 이렇게 놓고 볼 때, 예수님의 그 십자가

상에 돌아가신 것이 과연 그게 실패였고, 하느님의 뜻을 잘못 읽은 거냐? 도저히 그렇게 볼

없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도 그런 것들은 아니다.

 

# 선택 후 여건이 ?어려워지거나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하느님의 뜻을

                                     잘못 식별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선택한다 할 때는 지금 이 자리, 현재 주어져 있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그점에 있어서 성실한 판단이 이루저지

면은 그것으로서 족하다 하는 거예요.

 

# 하느님의 뜻을 식별한다는 것은 지금 주어진 구체적인 상황에서

                                             성실히 판단하는 것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이제 확증 절차를 거치는데 여기에서 이제 한 가지 좀 보완을 하고 ?넘어

갈 것은 우리가 첫째 시기, 둘째 시기, 셋째 시기 이런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확증 절차에 들

어오면은 셋째 시기는 첫째 시기나 둘째 시기의 보강 증거가 될 수 있고, 둘째 시기는 또 첫째

시기나 셋째 시기의 보강 증거가 될 수 있고, 첫째 시기는 또 셋째 시기나 둘째 시기의 보강

증거가 될 수 있고, 서로 서로 이렇게 막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 선택의 세 시기 사이의 관계

 

그런데 이랬을 때 이게 꼭 등급의 차이가 있는가? 지난 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원칙적으로

는 첫째 시기에 의해서 딱 선택을 하게 되면은 함부로 마음을 바꾼다든지, 상황이 바뀐다 해

가지고 식별 잘못했다 이래 가지고 딴 길로 갈려고 하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안 일어나기는

하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시기들은 각각 고유한 모습을 띠고 있고 독립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이렇게 봤을 때 "그렇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증거를 채택한 것이 다르죠.

 

# 선택의 세 시기는 각각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첫째 시기에는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하느님의 뜻, 그런 영적 체험 그게

증거로 등장하죠. 그다음에 둘째 시기에서는 영적 위안이나 영적 고독이 번갈아 가면서 일어

나는 것. 그게 증거로 채택이 되죠. 셋째 시기는 또한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서, 그거를 통해서

증거 채택을 하죠. 각각의 모습이 분명히 다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각자는 독립해서 하느

님의 뜻을 식별해 내고 선택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아.

 

첫째 시기의 방법만에 의해서 하느님의 뜻에 도달할 수 있고, 둘째 시기만에 의해서도 그럴

수 있고, 셋째 시기만에 의해서도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다. 머리로만 판단하는 것, 이성적

으로 +, - 따져 가지고. 이거는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뭔가 결정을 할 때, 이사를 갈 건가, 말 건가? 애를 학원에 보낼 건가, 말 건가?

며느리나 사위를 누구를 맞아들일 건가? 이런 거 떡 선택할려고 할 때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어떤 나쁜 점이 있는가? 이거 계산해 보는 것 예사로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쪽(+)으로 가야 돼. 이런 식으로 곧잘 얘기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

즉 데이타를 수집해 가지고 판단하다 보면은 결정적인 미스를 범할 수가 있는 것 하나는 그래

가지고 떡 선택을 해서 움직이고 난 그다음 선택할 때까지 몰랐던 새로운 상황이 등장하면은

하, 이 남자가 이런 남자일 줄 알았으면 내 결혼 안 했다. 수도회가 이런데 인 줄 알았다면 내

수도회 안 들어왔다. 이런 이야기들.

 

그러다 보니까 ?셋째 시기에서는 무슨 결혼을 한다든지 이런 중요한 결정은 셋째 시기의 방법

을 통해서는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아니죠. 셋째 시기를 가지

고도 얼마든지 충분히 할 수 있다.

 

# 셋째 시기의 선택처럼 이성만으로도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다

 

이냐시오 성인의 구체적인 예를 보면 편지가 하나, 델베르가라는 사람한테 보낸 편지가 하나

있는데 이분이 당시 대학교 교수였죠. 교수였는데 예수회에 입회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서는,셋째 시기의 방법을 통해서는 자기가 예수회에 들어가는 것이 분

명하다고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따른 영적 위안이 도저히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

서 내가 혹시 그냥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판단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게 염려가 돼서 이냐시오 성인한테 질의를 했을 때 성인께서 그렇게 답변하시는 거

예요. "아니다. 얼마든지 합리적인 이성만을 가지고도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식별하고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그 이성에 쫓아서 그렇게 성실히 움직이고 있으면은 나중에 하느님께서

더 큰 위로를 갚아주실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서로 첫째 시기와 둘째 시기와 셋째 시기는 각자의 모습이 다르고, 그러면서 고

유하고, 또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도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고, 독립되어 있고, 그러면

서 또 확증 절차하고 관련지어서 보면은 서로 서로 간에 깊게 연계 되어서 서로 보충할 수 있

는. 그래서 첫째 시기가 안 될 때 둘째 시기로 가고, 둘째 시기가 안 될 때 그것으로서 그냥 다

끝난다 이런 이야기는 아닌 거예요. 다른 시기의 방법들을 보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 다른 시기의 방법을 보충적으로 사용하도록

 

그리고 그렇게 비록 첫째 시기에 의한 체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셋째 시기나 둘째 시기를

통해서 거듭거듭 확인할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하고자 하는 바를 다 하는 것이다.

성령께 철저하게 협조하는 것. 그런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니까 중요하다. 이러면은 이제 거

의 하느님의 뜻이 드러났죠. 그다음에 이제 나오는 것이 확신이죠.

 

■ 선택에 대한 확신

 

확신 절차에 들어가는데 이 확신은 글자 그대로 이게 하느님의 뜻임에 틀림이 없다 하고

확신하고 봉인해 버리는 것. 그래서 끝맺는 것.

 

# 확신: 하느님의 뜻을 확신하고 결정을 내리는 단계

 

따라서 이 부분은 사실에 대한 판단이 ?문제들이 아닌 거예요. 증거가 이렇고, 이렇고 있으니

까 확신을 할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아니고 여기에서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적인, 진리

에 터잡은 사랑의 문제고 의지의 문제다.

 

# 확신: 사실적 증거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의지를 굳히는 문제

 

이게 하느님의 뜻임에 틀림 없구나 하고 탁 끝맺는 것은 그 근거는 어디 있느냐? 첫째 시기

증거가 있기 때문에, 둘째 시기나 셋째 시기의 보강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확신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여기에서 이제 우리가 처음에 출발할 때 성령께 대한

의탁과 신뢰, 성령께 대한 협조 이런 전제 조건이 갖추어져야 된다고 그랬죠. 그랬을 때 이

성령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내가 잘되기를 내보다 더 원하시는 그분이 이 긴 여정을 이끌

고 여기까지 오셨다.

 

만약에 그래서 내가 확증 절차까지 거쳐 가지고 A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만약에 이것이 하느

님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그전에 다른 싸인들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길로 이끄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 없이 여기까지 쭉 오신 것은 성령께 대한

사랑 내지는 성령의 나를 향한 사랑. 이걸 생각해 보면은 이게 하느님의 뜻임에 틀림이 없다

하고 확신하고 끝나는 것. 사랑의 문제인 거예요. 자, 이제 그럼 그랬을 때 지금까지 이렇게

해 오신 것을 보면 이 과정, 여기에 우리가 요청되는 것이 성실했어야 한다. 성(誠:정성성)을

다했느냐? 이 문제가 제기되는 거예요.

 

# 그 동안의 식별 과정이 성실했어야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성(誠)을 다했다. 성(誠), 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마는 성(誠)을 다하지 않고 한 두 번 기도해 보고, 한 두 번 이런 저런 생각 좀

해 보고 야, 나는 내 할 바를 다했다. 내가 지금 가정 주부로서 몸도 허약한대, 이 바쁜 와중

더  이상 뭘 어떻게 식별하겠느냐? 할 바를 다했다.

 

그러고는 성(誠)을 다했으니까 아, 이게 하느님의 뜻임에 틀림 없다 하고 확신을 내리면은

일주일도 못 가서 무너질 가능성이 크죠. 그러면은 어느 정도 했을 때 성(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죠. 경우에 따라서 다 다른 거예요.

 

식별하고자 하는 문제의 난이도, 내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하는

데 극히 개괄적으로,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은 이냐시오 성인, 절대 청빈을 식별하기

위해서 첫 단계가 10일 걸리셨죠. 그것처럼 우리도 뭔가 좀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면은

8일 피정, 10일 정도는 써야 되겠다.

 

# 식별에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

 

그리고 자기가 영적 식별이라든지 이런데 대해서 사전 지식을 좀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

만약에 안 되면은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되겠다. 그리고 좀 일상의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머물면서 식별해야 되겠다.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히 갖고 식별

해야 되겠다. 그렇게 충분히 다했을 때 아, 정말 내 양심에 비추어서 나는 내 할 바를 다했구

나! 이 결론이 탁 서면은 그때 성(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령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것이 틀림 없구나 하

고 저절로 봉해진다. 확신은 어금니 확 깨문다 해 가지고 확신이 딱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

(誠)의 과정을 쭉 거쳐 왔다면은 절로 안에서 꽃봉오리 터지듯이 터져나와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느님의 뜻이 이거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한 문제 하나는 하느님의 뜻은 신학자나 혹은 성직자만 잘 찾아내고

살아낼 수 있고, 무지렁이 같은 여러분들은 거기에 언감생심 따라가지고 못한다. 이런 이야

기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배웠느냐, 안 배웠

느냐?를 막론하고, 건강하냐, 안 건강하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100점짜리 하느님의

뜻을 찾아낼 수 있다.

 

#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

 

묵주기도 밖에 못하는 사람 같은면은 묵주기도만 하면서도 100점짜리 하느님 답안을 찾아

낼 수 있고, 세계 최고의 대신학자라면은 대신학자로서도 최고의 100점짜리 하느님의 뜻을

찾아낼 수 있고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 각자는 내가 성(誠)을 다할 수 있는 것 하고, 여러분

이 성(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여건이 아주 다르죠.

 

이런 점에서 성(誠)이 드러나는 정도나 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똑같은 성(誠) 내 안에서도,

여러분 안에서도 전부 일어날 수 있다. 그게 성령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고 협조다. 그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확신 속에서 찾아내고 그랬을 때 비로소 살아낼 수 있는

힘도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긴 여정을 걸어왔지마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선택하고 살아낸다 하는 이것은 무슨 테크닉, 기술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사랑의

문제인 거예요.

 

#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랑이다

 

맨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랑 때문에 시작하고, 움직여 나가는 과정에서도 계속 사랑이 동력

이 되어서 움직이고, 마감할 때도 사랑이 마감을 해 버리는. 이게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우리가 계속 애써왔던 우리에게 주어지는 큰 위로고 선물인 것 아닌가? 너, 내 할 것 없이

원하기만 하면은 완벽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완벽하게 살아낼 수 있다.

 

여기까지 하고 마쳤으면 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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