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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4 조회수1,091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Gross is the heart of this people,
they will hardly hear with their ears,
they have closed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be converted and I heal them.
(Mt.13,15)
 
 
제1독서 예레 2,1-3.7-8.12-13
복음 마태 13,10-17
 

만약 천사가 나타나서 “당신이 세 가지 소원을 청하면 그것을 다 이루어주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것도 청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시오.”라고 말한다면 어떤 소원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사실 어렸을 때, 이러한 상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라는 동화책을 읽고서는, 길거리에서 주전자만 봐도 괜히 문질러 보았던 기억도 있네요.

아무튼 이런 상황이 혹시라도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떤 소원을 빌 것인가를 어릴 적부터 쭉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말해야 할지,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를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일까요? 지금 현재 그 당시에 가졌던 소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올바른 것을 소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데 올바른 것을 소망했던 성경 속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 왕입니다(1열왕 3,5-13).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솔로몬이 청한 이 한 가지 소원이 하느님 눈에는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해주겠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솔로몬이 청했던 ‘듣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듣지 않는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지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헤어지고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자녀가 부모의 집을 떠납니까? 듣지 않기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들음이 사랑이며 지혜이며, 또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께서 성당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현존하심을 압니다. 거기에 규칙적으로 머무는 인간은 침묵하시는 하느님의 경청 속에 잠심하게 되고, 그 결과 침묵하는 듣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행복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현존하시면서 당신의 모습과 말씀을 교회를 통해 또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닫힌 마음으로 인해 보지도 또 듣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솔로몬 왕과 같이 잘 ‘듣는 마음’을 청하면 어떨까요? 분명히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대답이며, 그래야 우리 역시 전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인간 비참함의 원인은 홀로 방안에서 견디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파스칼).


 

주님께 집중합시다.

급하게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급한 상황이었지요. 한참 동안 머리를 써서 그런지 너무나도 시장했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마무리 짓지도 않고 나가서 식사를 할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마침 방에 빵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빵을 먹으면서 원고를 썼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원고를 다 썼습니다. 그리고 원고를 이메일로 발송하고 나니 시장이 확 몰려옵니다. 저는 아까 먹고 있었던 빵을 찾았지요. 하지만 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빵을 다 먹은 기억은 없지만,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도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빵을 다 먹었나 봅니다.

빵을 먹은 기억도 없는데 빵을 다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천천히 빵을 먹었다면 아주 맛있게 먹었겠지요. 그러나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 먹다보니 먹은 줄도 모릅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다보면 분명히 놓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딱 하나에 집중할 때 효과를 더욱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주님께만 집중해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오히려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주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부차적인 것들 때문에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오로지 집중하고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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