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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둘(二)'에 대한 묵상
작성자임성백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6 조회수820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예레7,1-11 마태13,24-30

'둘(二)'에 대한 묵상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을 맞이하여
둘에 대한 묵상을, 공동체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한 사람과 두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평범한 사실 같지만 깨달을수록 놀랍습니다.
한자의 두 '이(二)'자를 세워서 서로 기울여 놓으면
사람 '인(人)'자가 됩니다.

사람은 애당초 둘의 공동체적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혼자는 공동체라 하지 않고 최소한 둘이래야 공동체라 합니다.
하여 예수님도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혼자는 때로 얼마나 위태하고 쓸쓸해보이는지요.

혼자 외로이 걸을 때,
혼자 외로이 밥 먹을 때,
혼자 외로이 일할 때,
혼자 외로이 살 때보다  둘이,

그 이상이 함께 거닐거나, 밥먹거나, 일하거나, 살 때
보기도 좋고 안전합니다.

하여 함께 안에 홀로는 축복이지만,
고립단절의 홀로는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홍천 수도원의 수녀님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초창기 3개월 동안 혼자 지내다가 한 수녀님의 도반이 함께 할 때
천군만마를 얻은 듯 했다 합니다.
저 또한 혼자 산티야고를 출발하는 줄 알았는데,
하느님께서 뜻밖에 두 형제들을 선물로 보내 주시어,
순례를 앞두고 셋이 함께 걷기를 훈련하니
참 든든하며 배우고 깨닫는 바도 많습니다.

최소한 둘의 공동체 원형은 아마 남편과 아내의 부부공동체일 것입니다.

서로 다른 남편과 아내의 둘의 공동체보다
더 신비롭고 중요하고 힘든 공동체도 없을 것입니다.

끝까지 부부공동체를 살아냈다는 자체로 구원입니다.

오늘 복음의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부부공동체의 모범입니다.

이미 태중의 태교에서 또 태어나서는 신심 좋고 경건한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성모마리아님이 분명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입니다.

주님은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는 정말 놀라운 축복입니다.

개인은 약하고 부족해도
주님을 중심으로 함께 모일 때는 강한 공동체가 됩니다.

제가 안식년을 맞이하여 우선 찾은 것도
함께의 밥시간과 기도시간이 일과표에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장충동 수도형제들의 공동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함께의 밥시간과 기도시간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줍니다.
함께의 밥시간과 기도시간이 무너지면
공동체도 개인의 내적 삶도 서서히 무너지며 안정과 평화를 잃게 됩니다.

사실 성전에서
함께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전례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주님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날 보다 더 좋습니다.
바로 여기서 성전에서 받은 은총이
삶의 현실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합니다.
참으로 기도하는 이들은 기도하는 만큼 삽니다.

오늘 예레미야의 충고가 적절합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너희를 이곳에서 살게 하겠다.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말라.-

삶 따로, 성전 전례 따로가 아닙니다.

삶에서 우리의 길과 행실을 고칠 때
성전에서 살게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반면 거짓된 말,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우상숭배의 역겨운 짓들을 한 이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준엄합니다.
하느님을 떠날 때 이런 가라지들 만연된 세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집이 강도의 소굴로 보이느냐?“

우리의 삶에 따라 주님의 거룩한 성전도
가라지들 무성한 강도의 소굴로 전락될 수 있음을 봅니다.

새삼 성전에서 정성을 다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의 은총이 얼마나 큰 지 깨닫습니다.
우리의 길과 행실을 고쳐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밀과 가라지'의 복음도 묵상하며 답을 찾았습니다.

가라지 없는 세상은 환상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니 세상 끝날까지 세상 안에,
우리 마음 안에 가라지는 존재할 것입니다.

가라지를 무리하게 뽑으려 들 것이 아니라
밀의 세력을 강화시키고 가라지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바로 공동전례기도를 통한 주님의 은총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여 신심 깊고 경건하고 사랑 많은 공동체에는
가라지 세력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요아킴과 안나의 거룩한 부부공동체에서
참 좋은 밀같은 성모마리아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은총이 없이는
세상이나 개인의 내면은 가라지들만 무성하고
밀들은 서서히 질식으로 죽어갈 것입니다.

날마다, 규칙적으로,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거룩한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 은총이,
공동체는 물론 개인 안에 있는 밀의 세력을 왕성하게 하고,
가라지 세력을 약화시키며,
우리의 길과 행실을 주님의 뜻에 맞게 고치게 합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은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시편84,6.8ㄱ).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시편84,2)." 아멘.
- Fr. 이수철 l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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