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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버려야 주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6 조회수1,224 추천수11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7주일


<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복음: 요한 15,9-11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 버려야 주지!>

           

아녜스 수녀님은 로마에 성서를 공부하러 나왔습니다. 학부 과정부터 밟아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진이 빠지는 힘든 과정이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철학과정 한 학기를 마치고는 완전히 풀이 죽어 하느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원망하였습니다.

여름 방학 때 또 다른 수녀님이 돌로미티(이태리 알프스 지역)로 등반을 다녀오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엔 거기 갈 힘도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바람도 쐴 겸 가기로 하였습니다. 가게 된 계기는 그 수녀님이 에델바이스(알프스의 별)를 좋아했는데 그 꽃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왠지 그것을 보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800미터 고지에 있는 숙소에 머물며 3일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산에서 에델바이스 꽃만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등반하고 있는데 수녀님은 제발 에델바이스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땅만 쳐다보고 다녔습니다.

결국 3일 만에 자신은 에델바이스를 꼭 찾기를 원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한 명은 같이 가자고 한 수녀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태리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태리 사람이 하는 말은, 그 꽃은 매우 험준한 곳에 피기 때문에 이런 낮은 산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채취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서 꿈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부터는 셋이 함께 에델바이스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일주일이 다 지나서 다음날 새벽 로마로 돌아와야 하는 한 밤중이었습니다. 에델바이스를 찾지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짐을 차에 싣고 문고리를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태리 사람이 뒤에서 아녜스, 위를 봐!” 하고 알프스가 떠나가라 외쳤습니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녀님은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그렇게 구했던 것이 에델바이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의 별이란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수녀님에게 땅 바닥에 피는 에델바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상의 에델바이스를 선물로 주려고 하고 있었는데 수녀님은 땅만 바라보고 작은 꽃만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녀님은 그 때 얻은 힘으로 9년 만에 성서 석사 과정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주제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면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야만 합니다. 혹은 아주 귀한 진주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그것을 위해 내 자신을 비워낼 줄 알 때 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천상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찾아 헤매기 때문에 정작 그분께서 주시려고 하는 것은 받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해지려면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먼저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모든 율법을 잘 지켰지만 하느님 나라의 가치보다는 자신의 재산의 가치를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우울해 하며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부자는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재물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는 이상 그에게 하느님 나라의 행복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다 팔아서 가난해 지는 사람이어야 보물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난해 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팔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버려진 술통을 집 삼아 살던 자유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부자가 디오게네스를 초대하여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자랑하느라 디오게네스가 말 할 시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디오게네스가 그 부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아까부터 침이 고여서... 근데 이 집은 너무 호화로워 침을 뱉을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평화와 정의로운 삶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나의 뜻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얻으려면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 부자인 것이고 자기먼저 챙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바뀌어 주시기를 바랐던 사람이 가리옷 유다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꽃밭 길로 인도해 줄지 알았는데, 예수님은 계속 가시밭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팔아 가난해지고 겸손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아직까지 목숨은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해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묶여있는 만큼 그리스도를 딱 그만큼 따를 수 없고 딱 그만큼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가 현자의 제자가 되기로 하고 모든 것을 버린 하산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리던 때의 자존심과 명예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하산에게 마을 푸줏간에 가서 양의 내장 40킬로를 사서 등에 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산이 그것을 사서 등에 졌더니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와 오물로 온 몸이 젖게 되었습니다. 부와 권력을 누리던 그가 그렇게 마을을 지나오는 것은 진정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많아서 큰 냄비가 있어야 했습니다. 스승은 하산에게 다른 마을 푸줏간에 가서 큰 냄비를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억지로 순종하여 피 묻은 옷을 입고 얼굴을 숙인 채 냄비를 빌려왔습니다.

스승은 그가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린 뒤, 자신이 다녀왔던 두 마을로 가서 등에 양의 내장을 지고 가던 사람과 피 묻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을 보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가 돌아온 뒤, 스승이 물었습니다.

그래, 사람들이 너를 보았던 것을 기억하느냐?”

아닙니다. 아무도 제가 그렇게 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알았느냐?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만 관심 있지 남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모든 제자들에게 양의 내장으로 만든 스프를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먹어라. 이 스프는 핫산이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로 만든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신을 따를 때는 집도 가족도 애정도 모두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 꾸준히 고통과 멸시만을 청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 하나만을 위해 다 팔아버릴 수 있는 은총을 청한 것입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가 들지 미리 생각해 보아야하고, 싸움터에 나가려면 지금의 병력으로 이길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가진 것을 팔아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선물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내가 얼마만큼 내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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