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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작성자안희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8 조회수1,783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나는 어릴적에 세례를 받고나서 냉담하고 주일미사 다니다 말다하며 이렇다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체험없이 살아왔고, 하지만 주님의 은혜인줄도 모르고 내 인생은 큰 성공을 거둔것은 아니지만 큰 실패와 좌절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대학도 졸업하고 비교적 좋은 직장에서 인정도 받는 편이었고 월급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많이 받으면서 나름 행복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때 나에게 하느님은 거의 없었다. 물론 주일미사도 다니기도하고 또 안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하느님이 나에게 전혀 무관한 분은 아니었다.
이것이 세례성사의 은총이 아닌가 한다.
하느님없이 나는 나름대로 승승장구만 하다가 나는 내인생에서 큰 고비를 맞았다.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큰 사건들이 한꺼번에 줄줄이 터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길에서 큰 실패를 겪고 말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배신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위로도 용기도 희망도 주지 않고 나를 절망끝으로 내몰았다. 여기엔 가족도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병고와 사망, 그리고 나로서는 감당하지못할 일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한 인생의 짧은 시기에 이렇게 큰 시련들을 한꺼번에 주실수 있을까? 나보고 죽으라고 하시는건가 싶을 정도였다. 통상적으로 한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여러시간 속에서 겪을 일들을 왜 그 짧은시간에 허락하셨을까?
나는 깊은 충격과 좌절과 우울증과 자살충동 미움 분노 절망 등등에 오랜기간 시달려야 했다. 내 편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도 한통속으로 나를 내몰수 있을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와 웃고 울고 친했던 친구마저도 그렇게 내 앞에서 안면몰수할수 있을까?
정말 나에겐 아무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지상에서 내가 기대할 수있는 건 정말 하나도 없었다. 부모님도 나에겐 원수였다. 그렇게 한마디를 해도 대못을 박는 말씀으로 나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도대체 왜?!!!

이때 나는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젊은시절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또 새로운 직업을 가지면서 나는 점점 신앙쪽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청년레지오도 하고 그곳에서 단장도 하면서 나는 신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느님이 내 인생에 진지하게 자리를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청년때도 그랬지만 어릴적에 세례받고 이후로 쭉 나는 비신자와 똑같이 거의 살아왔다. 대죄 속에서도 많이 살아왔고 냉담도 오래했고 다른 이단도 잠깐 기웃거리고, 철학관도 가고, 미신에 심취하고...오랜 비신자와 같던 그 생활을 한번에 청산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련의 시기가 나름대로 정화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심한 이 고통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거의 매일미사를 다니고 묵주기도등 기도를 그래도 꾸준히 하였던 것이 은총이었던 것 같다. 마음 깊은 곳에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있었으면서도 나는 새벽에 분노와 절망으로 잠 못 이룰 때에도 이 고통 때문에 내가 하느님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신앙이 부족한 나에게도 그만큼 내 마음 깊은곳에 하느님이 계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심한 실패와 좌절의 시기속에서 한가지 체험한 것이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정신의 황폐함, 폐인과도 같이 된 나의 상태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할수 도 없었고 겨우 숨쉬는 것외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사실 이때 나는 심한 환자였었고 의사나 상담사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알지 못했기에 그저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고 지인들의 기도도움이나 가족들의 경제적 도움, 인내등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폐인이고 환자였으므로 내가 돕고싶어도 아무 도움도 줄수 없는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나는 사람들과 살아오면서 어떤 사람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 살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난 이때 그 사람들을 생각하였다. 혹시 그 때 그 사람도 말은 안했지만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많은 고통중에서 아무 도움도 줄수 없는 상태가 아니었을까하고 반성해 보게 되었다. 나는 많이 망가진 상태였으므로 돈으로도 육체적 도움으로도 심리적 위로도 누구에게 줄수 없는 상태 기도도 해줄수 없는상태였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려도 주님께서는 정말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실은 나는 하느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모든사람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자비하신지 지금까지 몇 년을 십원한장 벌지 못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할줄 모르는 나에게 먹을것 입을 것 용돈까지 다 채워주셨다. 그것도 좋은 것으로. 또 성령기도회로 나를 불러 주셔서 한없이 위로해주시고 치유해주셨다.
나는 꽃동네세계성령대회에서 성령세미나도 안받고 성령이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치유의 은혜와 심령기도를 받는 은혜를 주셨고 또 작년 국내성령대회에서도 특별히 청하지 않았는데도 왼쪽 어깨를 치유해주셨다. 또 꾸준히 성령기도회를 다니면서도 역시 특별히 청하지 않았는데도 어지러움증, 우울증, 가슴답답증, 무릎통증, 비오기전에 심하게 몸쑤시는 것, 위염, 생리양이 너무 많은 것, 대인공포증, 무대공포증, 마음의 상처, 오른쪽 눈아픈것, 코막힘,...등등 이루 말할수 없이 많이 치유해주셨다. 또 성령기도회에서 인정깊고 자비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셔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또한 알게 모르게 위로해주시고 치유해주셨다. 성령기도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함과 배려는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도 주지 않았던 용기와 위로와 희망을 이들이 나에게 주었고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최근에는 성령께서 상처와 죄 속에 숨어있는 악령들도 많이 쫒아내 주셨다. 또 구마치유은사자를 만나게 해주셔서 큰 상처와 큰 죄를 용서기도 하고 회개기도 하였을때 그 속에 숨은 악령들이 나가면서 구부정했던 어깨가 쫙펴지는 치유를 성령께서 선물해주셨고 항상 변비환자처럼 대변볼때 시원하지가 않았는데 대변이 시원하게 보는 치유은혜도 주셨다.
그리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이 상처준 부모님과 지인들을 용서기도와 그들을 미워했던 회개기도를 반복하니 그들과 마음으로 화해를 맺고 평화롭게 되는 은혜도 주셨다. 이 모든 것이 기적같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치유되고있어서 내 인생에 희망이 보인다. 돌아보니 너무 세속적으로 인간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정화의 시기로 이 시기가 허락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게속 이렇게 살다간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기에 하느님께서 모진 사랑의 매를 든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느님께선 어릴적 멋모르고 자살시도 했던 나를 살려주시고 운전하다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쩔줄 모르고 다 고장난 차를 자동차정비소앞에 차가 딱 멈추게 해주셨던 분이다. 한번도 안가본 여행길에서도 거의 한번도 안헤매고 자동으로 도착지에 인도해주셨던 자비로운 분이다.
얼마전에는 영성체를 하는데 성체가 혀에서 살아움직이는 것을 체험하였다. 이 체험을 실은 전에도 여러번하였는데 은혜인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은사자에게 여쭤보니 은혜라고 하셔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주님께서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구나, 하고 믿게 되었다. 체험이란게 믿음이 부족한 나에겐 필요했던 것 같다.
또 나는 축일과 생일에 대한 많은 상처가 있어 축일과 생일이 되면 기쁘지가 않고 늘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또 상처받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기대를 하지않고 오히려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랬고 속으로 기도하였다. 가족이 섭섭하게 해도 삐지지않게 해달라고... 그런데 올해는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셨다. 축일과 생일이 하루다음으로 연이어서 있는데 축일에는 내가 본당매일미사를 여느때처럼 가는데 그날도 성당거의 끝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본당신부님이 대제병 거의 반쪽 짜리 큰 것을 나에게 주시지 않는가! 평소에는 앞자리앉는 사람에게 주거나 그것도 4분의 1쪽짜리 주는데.. 난 그날은 그 많은 사람 중에서도 거의 끝에 있었고 그것도 반쪽크기를 주시는게 아닌가! 신부님은 내 축일을 모르시는데.
그때 주님이 나의 축일을 축하해주시는구나 자동으로 느낄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근데 그 다음날 내 생일이었는데 나는 걱정되었다. 신부님이 또 대제병 안주시면 실망할까싶어서 주님께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예수님. 오늘 저 대제병 안주셔도 되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무기대없이-실은 조금 기대하면서-영성체를 하였다. 물론 대제병은 아니었고 소제병이었다. 나는 조금 실망하면서 성체를 영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조금 단단하고 움직이지가 않아서 무슨 죄를 지었나 싶어 가슴이 뜨끔했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성체가 녹기를. 그런데 나는 조금있다가 잊지못할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성체가 조금씩 혀에 녹으면서 성체가 말할수 없이 세상의 어떤 생일케이크보다 달콤하고 향긋하고 맛있는 빵으로서 나에게 다가오는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웠다. 평소와 똑같은 우리밀 제병인데 우리밀 과자맛같은 밋밋한 맛이 아니라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신성한 느낌과 함께 너무 달고 향긋하고 맛있는 빵, 즉 생일을 맞은 나를 축하해주는 예수님이 주시는 거룩한 케이크였던 것이다.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체험이다.
환자와 폐인과 다름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올해도 또 큰 진전없이 생일과 축일을 맞는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신게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또한 생일축일의 상처또한 위로해 주고싶지 않으셨을까 싶다.

나는 성령기도회에서 만난 성령님을 통해서 많이 치유되었다. 내가 많은 상처속에서 살면서도 나는 내가 좀더 넓지못한 시각과 사고 속에서 오해에서 오는 상처도 많다는걸 알았다. 그래서 속이 좁아서 죄송하다고 주님께 말씀드린 적도 있다. 내가 좀더 마음과 이해력이 넓었다면 가족들과도 사람들과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오지 않았을텐데...많이 생각하게 된다.그리고 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시각속에서 스스로를 많이 위축시키고 살아온 것도 반성된다.
좀더 나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왔다면 내가 이렇게 큰 어둠과 실패의 좌절속에서 죽음의 밑바닥까지 겪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나는 평생에 겪을 터닝포인트를 지금 맞은 셈이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신앙의 터닝포인트. 그리고 회개의 삶...무섭고 어렵게 느껴지는 회개이지만 하느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가, 하고 느끼게 되었고, 또한 나는 내가 항상 보잘것 없고 쓸모없다고 많이 주눅들고 살았는데 나는 내가 어떤 처지에서도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서 다른 사람도 또한 너무나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예수님의 피로 얻은 하느님의 귀한자녀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자신도 소중하지 않았고 남들도 귀찮을때가 많았다.
나는 지금도 상처도 많고 또한 회개하지 못한 죄도 많아 아직도 많은 심적영적 고통을 많이 겪고있는 상태이다. 아직도 정상적으로 생활하지못하고 치유에만 매달리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느시기 보다 행복하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삶이 인간적으로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있지만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아무걱정도 안된다. 여행길도 거의 한번도 헤매지 않게 인도해주신 하느님이 하물며 내 삶의 여정을 지켜주지 않으실까 생각이 된다. 성모성월이면 늘 다른 달 보다 더 편안하게 나를 지켜주셨던 성모님과 또 성인들과 천사님들을 자주 부르며, 나는 지금 친한친구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 하루하루 그분들에게 의지하며 산다. 인간적인 애착이 너무 심해서 하느님보다 인간을 너무 사랑하며 살았던 지난 날이었다. 그것도 이젠 떨치게 하시려고 인간적인 배신들도 허락하신게 아닌가 싶다. 이젠 어떤 사람들보다도 하늘에 계신 분들에게 많이 의탁하고 살며, 또 그 체험도 많이 주셨다. 성인들을 부르면 언제나 다정하게 응답하고 도우신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큰 대죄인인데도 주님의 자애는 놀랍고도 영원하시다는 것을 나는 이 시련의 시기에도 너무도 많이 체험하고 있다. 또한 몰라서 그렇지 시련의 시기 이전에도 인간적으로 행복했을때도 아니 언제나 늘 하느님은 순간순간마다 인간을 떠받치듯이 섬기듯이 얼마나 사랑하며 돌봐주셨는지 많이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의 자애는 인간의 언어로 말할수도 없고 잴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시편의 저자와 같이 말하고 싶다. 나는 주님을 많이 경외하진 못했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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