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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배티 성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면 죽은 이도 살아납니다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28 조회수1,886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면 죽은 이도 살아납니다

 

    십자가 보목 성광.....성인 유해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예루살렘 언덕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송백나무 세 그루가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송백나무 세 그루에게는 각자 꿈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송백나무의 꿈은 언젠가 예루살렘 성전의 제대가 되고 싶은 것이었고

두 번째 송백나무의 꿈은 지중해를 오가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큰 범선이 되고 싶은 것이었고

세 번째 송백나무의 꿈은 내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하늘로, 하늘로 뻗어 올라가

가지를 쫙쫙~ 뻗어서 사람들이 내 그늘 밑에서 쉬게 하고 싶다~ 였습니다.

 

어느 날, 때가 되어 그 나무들에게 도끼가 쳐들어왔습니다.

첫 번 째 송백나무는 잘려서 목공소로 갔습니다.

목수가 대패질을 하고 끌로 파내는데 보니 아무리 보아도 제대 쪽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세상에나~ 소여물통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야, 인생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구나~ 내가 어쩌다가 여물통 신세가 되다니......’

 

두번째 송백나무도 잘려져서 만들어진 것이 범선이 아니라

두 사람만 타도 휘청거리는 쪽배가 되었습니다.

‘내 꼬라지가 어쩌다가 이런 쪽배가 되었을까!’

 

마지막 세 번째 나무는 베어지기 싫었지만 도끼가 ‘탕~’ 하고 찍는 순간

‘아, 이제 내 꿈은 사라졌구나~’

그런데 목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꼴을 보니

죄인 가운데 죄인이 달린다는 흉물덩어리 십자가가 되는 겁니다.

 

첫 번째 나무는 양, 염소, 말, 소들이 우글거리는 외양간에 놓여졌어요.

어느 추운 겨울날, 만삭이 된 여인이 여관방을 찾을 길이 없어서

들어와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아 여물통에 누였어요.

그 여물통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메시아를 가슴에 안았지요!

‘내 품안에 메시아가 들어오다니~’ 대박난 인생이지요.

 

그 아이가 자라서 30이 되자 공생활을 시작했어요.

치유와 구마를 행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다녔어요.

예수님은 쫓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쪽배에 올라 사람들을 바라보며

설교를 하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 설교대 발판이 되었던 쪽배가 두 번째 송백나무입니다.

 

마지막 나무는 어느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끌려나와 보니

자기를 지고 있는 죄수가 얼마나 맞았는지 성한 곳 하나 없었어요.

‘저 사람이 내 몸무게를 견딜 수나 있을까!

얼마나 못된 짓을 했기에 죽어가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까?’

 

그러나 이 십자가나무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 몸에 묻어있는 것이 메시아의 성혈이라고 하는 것을~

예수님을 내 품안에 안고 하늘을 향해 매달고 있었다는 것을~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으로 바뀐 것을~

 

세 그루의 송백나무의 꿈이 산산히 부서진 것처럼 보였지만

거룩하고 영광에 넘치는 삶을 감당하게 되었던 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무능하고, 내 인생은 실패했으며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이 순간, 이 세 나무의 교훈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는 비록 내 이름 석 자 아는 이가 없다 하더라도

하늘나라에는 기록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만 산다면 이 세상에서는 죽은 시체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생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만 산다면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 법대로 사느라 슬프게 살 수밖에 없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영적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나무들은 예수님께 큰일을 했지요.

첫 번째 나무인 구유와 두 번째 나무인 쪽배의 행방은 아직 더 연구를 해봐야 알겠지만

세 번째 나무에 대한 것만큼은 확실히 압니다.

 

세 번째 십자가 나무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느냐?

예수님 돌아가시고 난 후에 십자가 나무 세 개는 땅속에 묻히고 그 위에는 흙으로 덮혔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300년 뒤, AD313년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의 어머니인 헤레나성녀가 아들을 통하여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였습니다.

 

가톨릭이 박해로부터 해방이 되자, 헤레나 성녀는 아들에게 간청하였습니다.

“나 죽기 전에 소망이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골고다로 성지순례 좀 보내다오!”

헤레나 성녀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추정되는 골고다 언덕으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니 예수님의 무덤이 있던 흔적은 없고, 이방인의 식당만 즐비했습니다.

성녀는 이교도식당을 전부 허물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묻혔을 곳을 파내려가라고 했습니다.

10여 미터를 파내려가자 그곳에는 십자가 세 개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 라는 명패가 떨어져 나가

외관상으로는 어느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세 개를 펼쳐 놓고 주교님과 헤레나 왕후, 신자들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비천한 종에게 당신의 십자가가 어느 것인지 밝힐 수 있는 분별을 주십시오.’

그때, 예루살렘의 주교님 머릿속에 출애굽기에서 유대인이 뱀에 물렸을 때

구리뱀의 형상을 쳐다본 사람은 나았다~ 는 성경이 떠올랐습니다.

‘맞다, 구리뱀에게 능력이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리뱀에 비하겠느냐!’

 

주교님이 예루살렘의 환자들을 다 모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에 손을 대는 순간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고

나병환자의 상처가 꾸덕꾸덕 아물었습니다.

헤레나 황후는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이를 살려내야 한다~’

 

세상에는 개과천선하여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 곁에만 가도 좋은 기운 나와요.

회개한 사람에게는 치유의 기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우도의 십자가였지요.

비록 죽은 이를 살려내지는 못했지만 치유를 했습니다.

 

두 번째 십자가에 사람들이 손을 대자마자 심장이 터져 죽고, 상처가 더 심해졌습니다.

두 번째 십자가는 죽는 순간까지도 교만을 떨던 좌도의 십자가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만은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교만의 상처가 숭숭 난 사람은 온 동네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입으로 죄 짓는 이 10명만 있으면 본당이 망가집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십자가에 환자가 손을 대었더니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그곳에 시체를 올려놓고 기도하자 시체주변에 장미향기가 풍기면서 뼈와 살이

붙더니 마치 낮잠을 자고 일어나듯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헤레나 성녀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았습니다.

 

헤레나성녀는 그 십자가를 고스란히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1300ㅇ여년을 원형대로 보존하다가 지금으로부터 400여젼 전에

큰 덩어리를 잘라서 베드로 대성전 밑에 라테라노 대성전에 모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추기경 서임을 받은 사람만 친구를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십자가는 작게는 3mm, 크게는 5cm까지 잘라서 전 세계로 보내졌습니다.

첫 번째 교황청령 프란치스코 본원, 베네딕도 본원 등에 하사하였습니다.

 

십자가보목(잘게 잘라진 십자가 조각)이 또 어디로 갔느냐?

가톨릭에 공로를 많이 쌓은 가문에 로마교황청에서 보물로 하사를 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초등학교 첫영성체 교리 할 때, 어느 수녀님에게 들었어요.

 

한국은 평신도에 의해서 천주교가 들어온 곳이며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던 곳인데도

십자가 보목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사제가 된 후 외국에 나갈 때마다 십자가 보목을 구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구할 수가 없었어요.

 

2002년 씨애틀 타코마라는 곳에 두 번째로 피정을 하러 갔습니다.

보니 앞쪽에 할머니들이 한 10명 쫙 앉아서 제 강론을 들었어요.

끝나고 나서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3년 전에 오셔서 십자가 보목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모셔갔습니까?”

“아니요.”

“제가 십자가 보목 드릴까요?”

“할머니나 가지세요.”

왜?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 보목이라고 사오는데 100%가 다 가짜예요.

 

“신부님, 제 이야기 들어보지도 않고 왜 무시합니까?”

“할머니가 갖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 할머니는 남편이 미국 군인이라 미국성당엘 다닌대요.

갈멜 제 3회 회원으로 50년 동안 기도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신부님께서 3년 전에 다녀가시고 두 달 정도 안 되었을 때, 갈멜회원으로 함께 활동하는

미국할머니가 유언을 남겼대요.

“내 너를 수 십년 동안 지켜보았는데 참 열심하더라. 우리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을 전하겠다.”

그 할머니는 어떻게 모시게 되었느냐~

뿌리가 아일랜드였는데 할아버지가 대성전을 지어 봉헌했대요.

로마교황청에서 감사의 선물로 십자가 보목을 하사한 겁니다.

그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200여년 전에 할머니 후손부터 가톨릭 신앙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을 너한테 주는 게 아니라 맡기는 거다.

물론 필요한 사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첫 번째,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여야 한다.

두 번째, 치유시키는 사제여야 한다.

세 번째, 말씀을 선포할 때는 몸에 반드시 십자가보목을 지녀야 한다.

그 세 가지 조건에 합당한 사제가 나타나면 미련 없이 그 사제에게 봉헌해라!

 

십자가 보목을 지녔다는 소문을 듣고, 그 할머니 집에 환자들이 바글바글했답니다.

친구 한 번 하자고....그 집에만 다녀와도 치유가 일어난대요.

교구가 시끄럽자 주교님이 명령했답니다.

“빼앗지는 않을 테니 보이지 마라!”

 

할머니는‘이 김웅열신부님을 다시 한 번 타코마로 불러주셔서

이 십자가 보목을 한국 땅으로 모셔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2년 7개월 동안 단식을 하며 기도했대요.

 

그런데 한 달 전에 주보를 보니, 김웅열신부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있더랍니다.

‘과연 저 신부님이 십자가 보목을 가져갈 자격이 있을까!’

할머니들이 피정 하는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면서 분별을 했대요.

“신부님 오늘 3시간 강론하실 때, 신부님 뒤에서 환하게 광채가 났습니다.”

할머니들은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대요.

“어서 보여주세요.”

“오늘은 안 가지고 왔어요.”

그 다음날 저녁까지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한 달보다 더 길었어요.

 

둘째 날, 할머니가 자개함 안에 십자가 보목을 모시고 왔어요.

그 십자가 나사를 돌리니까 십자가가 포개지면서

나무십자가 안에 성혈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어요.

저는 그날 예수님의 보목이 있는 그 고상을 받아가지고 숙소에 들어와

성체포를 깔고 그 위에 십자가 보목을 올려놓고 바라보며 한 잠도 못 잤어요.

‘2000년 전, 뿌리도 없는 이 작은 조각이 예수님의 거친 숨소리 들었을 것이고,

성모님의 흐느낌을 들었을 텐데~’

 

저는 보물단지 모시둣이 한국으로 모시고 와서 할머니와의 약속대로

말씀을 선포할 때는 십자가 보목을 꼭 가지고 다녀요.

그리고 모시고 난 다음 부터는 한국 신자들에게 십자가의 보목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

진천성당에 있을 때는 본당신자들에게 성시간 첫목요일을 지켰습니다.

감곡성당에서는 매월 첫 토요일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십자가 보목 친구를 했습니다.

배티에서도 매월 첫째 주에 십자가 친구를 하고 있습니다.

 

배티성지에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내려온 십자가 보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어떻게 신부님이 십자가 보목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배티성지에는 십자가 보목이 두 개입니까?

모르시는 분이 많아서 설명을 드리는 겁니다.

 

세 그루의 송백나무의 꿈은 인간적으로 보면 산산히 깨어진 것 같았지만

하느님은 역시 드라마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십자가의 무게가 날 죽일 것 같아도 기운 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면 죽은 이도 살아납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순교의 반대말이 뭡니까?

배교?

아닙니다. 순교의 반대말은 박해입니다.

박해는 뭐냐?

하느님을 못 만나게 하는 것이 박해입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사탄의 계략입니다.

 

초대교회부터 박해는 계속됩니다.

현대의 박해는 외부에서 온다기보다 내부에서, 나에게서 오는 게 큽니다.

내 약점을 사탄이 이용합니다.

 

현대의 영적인 박해는 크게 네 개로 봅니다.

첫 번째, 자기를 우상화하는 겁니다.

이성주의, 교만, 편견...... 이런 것이 하느님을 밀어내고 들어가 자기를 우상화하며

내 안의 성령을 모독하는 겁니다.

 

영적 박해 두 번째, 물질을 통하여 옵니다.

하느님 보다 돈을 선택하게 하고, 배반하고, 사기 치게 하며 또 하나의 유다스를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세 번째의 영적박해는 성의 유혹입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성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불의 심판을 받았던 소돔과 고모라는 지금 시대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영적 박해 마지막 네 번 째는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자기는 별로 회개할 게 없다고...... 회개를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첫 번째, 우상숭배

두 번째, 물질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세 번째 성의유혹을 통하여

네 번째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순교의 반대말은 박해입니다.

하느님을 못 만나게 하는 게 박해입니다.

가족이 나 때문에 성당 나가는 것 중지한다고 하면 박해하는 겁니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 때문에 15년 동안 성당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내 가족이 나로 인하여 하느님을 못 만나게 한 적은 없었던가!

 

 

 

♧느티나무신부님 (2014. 7월 5일 배티은총의 밤)

 

배티 은총의 밤 - photo by 베티딕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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