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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31 조회수1,490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net thrown into the sea,
which collects fish of every kind.
When it is full they haul it ashore
and sit down to put what is good into buckets.
What is bad they throw away.
(Mt.13,47-48)
 
 
제1독서 예레 18,1-6
복음 마태 13,47-53
 

지금 현재 인터넷을 통해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제가 직접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영하다가, 2005년부터 다음 카페에 둥지를 틀고 운영하고 있지요. 10년 넘게 카페를 운영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이상한 논쟁이 붙어서 ‘죽이네, 살리네.’ 하며 싸우지를 않나, 종북문제로 시끄러웠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게시물(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민망한 성적인 게시물이었습니다)이 무슨 문제가 있냐면서 이렇게 폐쇄적인 카페에서 활동할 수 없다면서 탈퇴하신 분도 있지요.

하긴 현재 카페 가입자는 13,000명이 넘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이 정도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인터넷을 통해서 증오를 퍼붓는 것은 아무 생각 없는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가장 힘 있는 행동은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비판과 단죄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기도해주고 염려해주는 모습. 즉,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 가장 힘든 일임을 깨닫습니다.

이 원칙을 따르고 싶은데 솔직히 상당히 어렵습니다. 제 자신이 약해지는 것 같고, 억울함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내가 이런 평가를 받으면서도 카페를 계속 유지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사랑의 원칙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제1원칙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원칙을 어떤 순간에도 잊지 않으셨고, 이 원칙에 따라 우리를 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우리의 제1원칙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주님처럼 ‘사랑’에 두어야 하는데, 다른 곳에 제1원칙을 둘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 주님의 제1원칙인 사랑을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하늘 나라는 호수 바닥을 긁으며 그 안에 걸려든 온갖 생물을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물에는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할 것 없이 다 들어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당신의 그물 속으로 모은다고 하십니다. 즉,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세상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이처럼 모든 이를 당신 그물에 모아들이시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사랑을 반성했으면 합니다. 차별 없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과는 달리 온갖 조건을 내거는 이기적인 사랑만을 하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현명한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을 이해하려고 들지요.’

그렇습니다. 사랑을 이해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진정을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 그 자체를 받아들이면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현명한 사람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마크 트웨인).


 

어떻게 사람을 보는가?

미국의 한 농장에서 한 청년을 고용했습니다. 주인은 남루한 차림의 청년에게 허드렛일을 시켰지요. 그런데 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청년과 자기 딸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주인은 어떠했을까요? 노발대발하면서 청년을 쫓아냈습니다. 청년과 딸은 그 뒤로 서로 만날 일이 없었지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그 주인은 농장을 정리하다가 옛날 그 청년이 남겨놓은 노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 노트에는 이렇게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임스 에이 가필드(James A. Garfield)”

바로 당시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이름을 보고서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딸과 사랑을 나누었던 청년이었던 것이지요. 농장 주인은 장래 대통령이 될 청년을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겉모습만을 보고서는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겉모습만을 보고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한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올바른 판단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사랑의 관점을 통해서 사람을 보도록 노력해보십시오. 현재의 물질과 지위보다는 더 크고 중요한 사랑을 통해서 바라볼 때,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고 좋은 결론도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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