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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필요할 때만 찾는 친구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31 조회수1,456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7주일 금요일


<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복음: 마태오 13,54-58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6), 제노바 롯소궁전


     < 필요할 때만 찾는 친구 >

            

    정철상의 커리어노트란 사이트에 이런 고민을 하는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32세 여성입니다. 요즘 인간관계 문제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10년도 넘은 인연이네요. 참 오래된 친구지만 만날 때 마다 낯선(?) 사이죠.

그 친구가 아주 오랜만에 연락해서 뜬금없이 어디서 보자하고 일방적인 약속을 하면 그래도 오랜만이니 한번 보자하고 나가면 역시나 하고 짜증나는 시간을 견디죠. 그런 식으로 만나는 친구랑 무슨 얘기 거리가 있고 우정이 쌓이겠어요. 만나면 그냥 동석할 뿐이죠. 같이 있으면 더욱 외롭고 쓸쓸한 느낌... 아주 힘이 들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요.

안보겠다 마음먹고 있다가도 한번 낚시질에 걸려 다시 기대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또 역시나... 마지막 인간관계마저 끊길까봐 그 친구를 붙잡고 있는 것인지 제가 문제가 있는 것이지를 모르겠어요. 참 어려워요. 실제적인 조언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때만 나를 찾는 친구, 정말 얄밉죠. 그런데 정철상 씨는 오히려 그런 친구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 여성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조언해줍니다.

일단 말씀처럼 그 친구 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나르시스트적인 경향이 있어서 자기중심적으로 움직입니다. 필요할 때는 찾고, 필요 없을 때는 찾지 않죠. 상대의 관심보다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상대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본인입니다. , 그 친구도 문제지만 휘둘리는 본인도 문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가치 없는 친구에게 매달립니까. 왜 버리지 못하십니까. 그것은 내면에 두려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이 친구라도 없으면 더 외로워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그 친구가 크게 상처받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그러한 두려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만약 저런 친구가 있다면 저라도 에너지를 계속 그 친구에게만 쏟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집착해서 계속 만나주는 것이 나의 외로움을 증명하는 것이겠죠. 예수님도 도저히 안 될 것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유다가 당신을 배신하러 나가는 것을 굳이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필요할 때만이 아니라 항상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까?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상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용당하는 분이 하느님일 때는 나는 내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하느님은 그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켜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마치 실로처럼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가 왜 실로를 떠올렸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실로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예전에 계약의 궤가 모셔져 있었던 곳입니다. 계약의 궤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했습니다. 실로는 하느님의 궤를 모신 성전의 역할을 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그 곳에 계시는 동안 내내 사람들은 조각 신상을 만들어놓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판관 18,31 참조).

엘리 예언자가 대사제로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불레셋 군과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들은 계약의 궤를 생각해 냈습니다. 계약의 궤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전쟁에서 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재빨리 실로에 있는 계약의 궤를 옮겨왔고 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불레셋 군도 기가 꺾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불레셋 군의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의 궤는 그들 차지가 되었고, 엘리의 두 아들이 죽었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엘리도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게 되었습니다.(1사무 4장 참조) 유다가 멸망하자 실로는 그 이후부터 성경에서 저주받은 자의 칭호가 되었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가 예언하는 대상은 사제와 예언자, 또 성전으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개인의 필요를 챙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엄청난 사랑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이들을 채찍으로 몰아내셨습니다. 하느님이 사셔야 하는 집인데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모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칫 필요한 때만 주님을 찾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그분이 우리를 저버릴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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