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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01 조회수1,055 추천수1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복음: 마태오 14,1-12






세례자 요한의 죽음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7), 런던 국립미술관

 


     <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다 >

  

  독일의 미네르란 목사는 전쟁백서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독재에 항거하다가 8년 동안 옥중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날 무렵 같은 꿈을 일곱 번이나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일렬로 줄을 서 있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도 그 줄에 끼어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선 사람은 옆의 사람을 볼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심판자 앞에서 오직 자신의 모습만 들여다보기도 버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앞 사람까지 차례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꾸 주위를 두리번대고 있더랍니다. 그리고 결국 미네르 목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이 사람 때문입니다!’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 자세히 보니 자신 앞에 있는 그 사람이 히틀러였다는 것입니다.

어리둥절해져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네르야, 히틀러가 이렇게 된 것은 너의 탓이다. 네가 8년 동안 히틀러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비판만 했지 언제 이 사람에게 나를 알게 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니?”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가 그런 전쟁광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꾸라져 한참을 울었고, 그래서 써낸 책이 바로 전쟁백서라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할 때는 반대로 자신을 정당화 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정당하니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이 이를 깨닫고 남을 비판하는 일을 접어야만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잡아서 사형에 처하려고 합니다. 그가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랑인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당당히 말합니다.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떱니다. 무슨 말 때문에 두려워했을까요? 바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내려치기 위해 돌을 들고 서있는 자칭 정의로운(?) 사람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그리고 바닥에다 그들의 죄를 일일이 쓰시며 이렇게 되뇌셨을 것입니다.

너희들의 죄를 스스로 책임지고 싶다면...’

돌을 들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돌을 던지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하느님 앞에서 떳떳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앞서서 자신 눈 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남의 눈에 티가 보이면서 자신 눈 안에 들보를 어떻게 보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나쁜 의도가 자신의 들보를 가려버리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느님 앞에서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여자를 만들어 준 하느님과 그 여자에게 핑계를 돌립니다. 그때 하느님은 아담의 죄가 무엇이라고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가 판단하는 것을 보시고는 바로 그를 죄인으로 단정하여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십니다. 판단하는 이의 죄를 일일이 따질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어서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죄란 바로 자아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아 자체가 죄입니다. 그 죄가 나의 주인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판단하는 사람 자체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심판자이신데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루살렘 시민처럼 재빠르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에 그를 살려두기로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인데 남을 판단한 사람의 책임이란 바로 자신도 판단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 “내 탓이오!”를 세 번 외칩니다. 이것이 구원의 외침인 것입니다. 내 탓이라면 다른 사람 탓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자비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처럼 자신의 탓을 인정하여 자비만을 바래야 하는 처지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정당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자신의 행위로 자신을 정당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동생도 판단하여 결국 아버지의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결코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다른 이를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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