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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08 조회수980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Mt,16,24)
 
 
제1독서 나훔 2,1.3; 3,1-3.6-7
복음 마태 16,24-38
 

신부로 살아가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괜히 제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높은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니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 실제로 우리나라 최고의 자리라고 평을 받는 대통령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그룹의 대표를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저의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럽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초라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분들은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적게 가지고 있지만,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삶의 기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떳떳합니다. 그래서 불의에 대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주님의 뜻인 사랑과 정의를 이 세상에 펼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분들 앞에서는 제가 작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제대로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그들의 삶에 부러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따져 보았을 때에는 별 것 없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영적 가치는 너무나도 높고 크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가치를 따라야 하는가? 물론 주님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가치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직도 깨지고 부서져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주님의 뒤를 따라오는 길은 내 자신만을 위하는 세상의 가치를 쫓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고통과 시련을 동반할 수 있는 주님의 가치를 쫓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십자가는 크고 무거우며 힘들게만 보일까요? 그래서 쉽고 편한 세상의 가치를 일순위에 놓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 판단이 틀렸음을 이러한 말씀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긴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집니까? 이 세상 안에서 아무리 최고의 위치를 누린다 해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누렸던 것을 그대로 들고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주님께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돈, 명예, 온갖 부귀영화가 주님 앞에서는 모두 하잘 것 없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작 추구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 가치를 두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오늘을 만들어 보세요.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에머슨).


 

결국 우리들은 모두(박광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중에서)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로 계신 김동길 교수님께 오토바이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클론의 강원래 씨가 물었다.

자신은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결혼은 했지만 그 사고로 인해 아이를 가지지 못하다가 인공수정을 통해 결혼 10년 만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닮은 어린 새 생명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축복 받을 일이지만, 자신이 장애인이어서 장애인을 부모로 둔 자신의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스럽고 두렵다고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질문을 받은 김동길 교수님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나이가 들어서 늙으면 모두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돼요. 단지 강원래 씨는 사고로 먼저 장애인이 된 것뿐이지요. 그러니 걱정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요.”

저는 건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자신만 할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살 하나 찌지 않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조금만 먹어도 아랫배가 뽈록 나오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매년 감기에 걸린다는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약골이야?”라고 말했는데, 올해에는 계속해서 감기를 달고 삽니다. 튼튼하다고 자부했던 저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불편한 장애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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