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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말씀 묵상 - 나를 부르시는 분의 실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10 조회수1,05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9주일 월요일


<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독서: 에제 1,2-5.24-28ㄷ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 나를 부르시는 분의 실체>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곡 중의 하나지만 감정과 실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절대 불려서는 안 되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임재범의 고해입니다. 노래를 직접 들어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가사만 적어봅니다.

 

- 임재범 고해 -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감히 제가 감히 그녀를 사랑합니다.

조용히 나조차 나조차도 모르게

잊은 척 산다는 것 살아도 죽은 겁니다.

 

세상의 비난도 미쳐 보일 모습도

모두 다 알지만 그게 두렵지만 사랑합니다.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런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용서해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그녀만하나만 허락해 주소서.

 

아마도 신학생이나 사제가 부르면 맞는 가사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갈등이 찾아옵니다. 하느님과 흥정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따를 테니 그 사람 하나만 허락해 달라고. 그러나 하느님께 우리가 무언가를 해 드린다고 과연 그분께 다른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처지일까요?

 

오늘부터는 에제키엘서가 시작됩니다. 에제키엘서는 에제키엘이라는 예언자가 바빌론으로 유배가서 그 생활하는 동안, 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망하고 유배를 오게 되었는지를 뼈아프게 예언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희망입니다. 마치 다 썩어버린 뼈다귀가 살이 붙고 사람이 되듯, 자신들을 다시 당신의 백성으로 삼고 새 예루살렘으로 이끄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예언서입니다.

 

오늘 독서는 그 시작부분인데, 하느님의 영광이 에제키엘에게 나타나 에제키엘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묘사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바람이 불고,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들고, 그 광채 한가운데 금붙이와 불과 같은 하느님의 영광이 큰 무지개를 뿜어내듯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큰 바퀴와 이상한 형태의 동물들,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는 천사들과 후에 4복음서를 상징하게 될 생물들이 나타납니다.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서 정말 무섭고 힘 있고 위대한 누군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특수효과를 다 쏟아 부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에제키엘을 예언자로 부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 계시록에서 요한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본 사람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겁에 질려 그저 목숨만 살려주시면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떤 특별한 소명으로 부르실 때 우리가 그 소명에 응답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무언가로 부르시고 있는 그 분의 참 실체가 무엇인지는 깨닫고 있으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사제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저는 당신의 뜻 보다는 이 사람을 택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부르심으로 부르고 계신 분은 내가 감히 얼굴을 들어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시며 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존재도 없이 사라지게 하실 분이라는 것만은 알아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유라는 것을 주시기는 하셨으나, 그것은 순전히 그분의 사랑 때문이지 결코 우리의 흥정상대가 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 사랑이 불타오를 때는 상대만 있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면 점점 상대가 무언가를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무언가를 고쳐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며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안 그랬지만 상대가 점차 작아 보이니 그런 요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흥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흥정을 한다는 말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약해진 동시에 그분을 하느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하면 변할 수 있는 보통 사람처럼 격하시켜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신 분이시지만, 그 분은 우리가 결코 내가 이것을 해 줄 테니, 당신은 나에게 이것을 좀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흥정할 상대가 아니라, 그저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서 당신께서 원하시면 저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분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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