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말씀 묵상 - 성경이 꿀처럼 달기 위해서는?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11 조회수1,357 추천수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 내가 그것을 먹으니 입에 꿀처럼 달았다. >


독서: 에제 2,8-3,4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


렘브란트 작, (1647-49),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278 x 388mm, 암스테르담 미술관


     < 성경이 꿀처럼 달기 위해서는? >

  


 

저는 복음화국에 있는 관계로 요즘 부탁을 받아 안상홍 씨가 만든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신천지에 이어 가톨릭 신자들이 그 곳으로도 많이 빠져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서적으로 그들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안상홍은 자신이 그리스도라 합니다. 다윗이 40년을 지배했듯이 그리스도도 40년을 지배해야 하는데 예수님의 공생활이 3년이고 그 모자라는 37년을 자신이 채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자신이 성령도 된다는 양태론적 이단에 빠져있습니다. 전에는 파라클리토스(개신교에서는 보혜사로 번역)라 불렸지만 지금은 안상홍으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성령도 되니 하느님 아버지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인 부인이라고 말하는 장길자 씨를 하나님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물론 첫 부인은 아닙니다. 영적인 첫 부인, 엄수인 씨는 자신이 진짜 하나님의 신부라 하며 갈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안상홍은 죽기 전 장길자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신부교리는 어린양과 혼인하는 천상예루살렘을 그렇게 갔다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바오로가 여자는 머릿수건을 써야 한다고 해서 가톨릭처럼 미사수건을 씁니다. 이것 때문에 아마도 카톨릭 신자들이 덜 불편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월절’(카톨릭은 과월절이라 함)을 꼭 지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과월절(닛산달 14)과 연계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초봄(4)에 태어났다고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로 세우신 과월절을 빵과 포도주로써 꼭 닛산달 14일에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하며 유태인들처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리고 1225일은 로마 태양신을 탄생일을 가톨릭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따라서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물론이요 십자가까지도 우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이비들이 다 그렇지만 종말 임박설을 주장하며 매번 종말의 날짜를 세우고 그 날짜가 지나면 다음으로 넘기는 수법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성서해석이나 교리들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예수님은 당신 양 떼는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왠지 이런 교리를 듣기가 매우 거북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왜일까요? 그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은 교리나 성경을 믿지 않는 것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교회론에 관한 문제이지 성경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이단들의 성서 해석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장엄한 현시를 체험하고 얼굴을 땅에 대개 엎드려있는 에제키엘에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주십니다. 두루마리는 말씀이 쓰여 있는 성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위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슬픔과 애처로움과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들어있는 책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책을 받아먹을 때는 입에 처럼 달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믿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분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은 나에게 꿀처럼 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이 멋지게 보이지만 사랑이 줄어든다면 아무리 멋진 말을 해도 좋게 들리지 않게 나중에는 숨소리도 듣기 싫어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존재가 먼저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씀을 거북하게 여겨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떠나가도록 내버려둡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빵을 배불리 먹었을 뿐이지 그 빵을 주시는 분은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말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열두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도 떠나가겠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들은, “당신께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신데 저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리고 듣기에 거북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 또한 달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말씀을 읽다보면 신앙이 강해져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것을 주시는 분을 먼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말씀이 거북하게 되어 오래 읽어 내려갈 수가 없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통독하려고 하지만 초반에 다 포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맛이 없는 이유는 그 성경을 제공해주는 교회, 또 그 성경말씀을 해 주신 분,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전통은 처음부터 성경을 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에제케엘 예언자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먼저 보여주신 다음 두루마리를 내미신 것처럼, 교회에 들어오면 먼저 교리를 통해 하느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파견한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부터 가르치고, 그 믿음이 생겼을 때 비로소 성경을 읽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증명해 줄 성경 말씀들이 이해되기 때문에 성경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유태인이 읽으면 유태인의 믿음대로, 개신교인이 읽으면 개신교인의 믿음대로, 가톨릭 신자가 읽으면 또 가톨릭 신자가 배운 교리대로 해석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치 성체를 보면서 오직 가톨릭 신자만이 그것을 성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믿음이 생겨야 말씀이 이해가 되고 잘 받아들여집니다. 성경 이전에 교리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리가 바탕이 안 되었는데도 성경을 읽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바오로는 성경을 다 외우다시피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해 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인의 가르침만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아도 교회를 박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니아스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자 비로소 성경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자신이 박해하던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였음을 알고 나니 성경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이 세례로, 물이 성령으로, 그 물이 뿜어져 나오는 바위가 그리스도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성경을 자기 식대로 꿰어 맞추는 것을 보면 혹해서 그것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경을 보게 된다면 그런 것들은 그저 말놀음에 불과함을 알게 되어 결코 그런 이단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성경 이전에 교회의 가르침이 먼저입니다. 교부들께서 성전과 성경을 통하여 세워 놓은 교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자기식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교회가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일 수 있는 이유는 그 가르침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이 가톨릭의 기초가 아니라 교부들이 세워놓은 교리가 기초입니다. 우리 교리를 먼저 확실히 안다면 다른 이단들에서 무엇이라 하던 그들 말이 들리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이 들어 그들로부터 피하게 됩니다.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우리는 아멘!’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양은 그저 밀떡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제가 교회를 대표해서 교회 안에서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믿느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때 신자들은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몸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신앙고백인 아멘!’을 하는 것입니다. ,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믿으면 그것이 성체가 되지만, 교회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밀떡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내밀고 있는 교회를 먼지 믿어야지 그 성경말씀에만 집중하면 그저 문자로밖에 보이지 않고 그것만 분석하며 각자의 다른 의견밖에 나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가 바로 성경을 해석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믿으면 됩니다. 먼저 교회를 믿어야만 그 문자가 영적인 것이 되어 나에게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어져 성경이 마치 성체처럼 입에 꿀처럼 달게 되는 것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ca-osan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