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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15 조회수784 추천수5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Blessed are y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Lk.1,42)
 
 
제1독서 묵시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제2독서 1코린 15,20-27ㄱ
복음 루카 1,39-56
 

얼마 전,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어느 한식집에 들어가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설렁탕이 나왔는데, 그 맛이 너무 싱겁더군요. 저는 소금이 담겨있는 조그마한 단지에서 한 스푼을 덜어 설렁탕 그릇 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간이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넣은 것도 아닌데도 너무 짜서 결국은 물을 섞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네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약간의 소금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약간의 것으로도 충분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조그마한 비누 하나로도 며칠 동안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연필 하나라도 노트 한 권을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초라도 방 안을 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이 이 정도가 되어야 충분하다면서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약간의 것으로도 충분히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작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보이는 상황이 다가와도 감사할 수 있으며,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을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에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친척인 엘리사벳을 만나 인사하자마자 찬양의 노래를 부르시지요. 사실 그 당시는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했던 순간,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사명을 받았던 순간, 앞으로 다가올 어마어마한 일들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철저히 하느님께 순명하시고,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사는 삶 안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삶이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듯, 죽음을 뛰어넘어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러 올라가시게 되는 ‘성모승천’이라는 영광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일보다는 세상의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의심하는 우리, 기쁨보다는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통해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는 우리……. 이러한 우리의 모습 안에서 과연 하느님의 영광이 이 땅에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철저히 의탁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기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환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진다(김미나).

 

말을 건네지 않은 나무(‘좋은생각’ 중에서)

일본에 가뭄이 들자 한 남자가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돌며 “말라 죽지는 말아 주렴.”하고 부탁했다.

사실 그가 모든 나무에게 그랬던 건 아니다. 남의 밭이나 도로 경계에 있는 사과나무에겐 말을 건네지 않았다. 사과나무와 말하는 모습을 주위 농가에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말라 죽은 사과나무는 적지 않았다. 밭 여기저기에 메마른 사과나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사과나무를 살피던 남자는 기묘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말라 죽은 사과나무는 일정하지 않았고, 장소에 따른 규칙도 없었다. 강한 사과나무는 살아남고 약한 사과나무는 말라 버렸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도미노를 쓰러뜨린 것처럼 한 줄의 사과나무만 죽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 일을 뼈아프게 후회한다.

그가 말을 건네지 않은 사과나무였다.

우리 곁에 말을 건네지 않는 사람은 없을까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뼈아프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생명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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