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말씀의초대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0 조회수54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그들은 불행하다고 질타한다.

양 떼를 먹이는 임무를 잊고 자기들만

양을 잡아 배불리 먹으며 양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과 대적하시어

당신의 양 떼를 구해 내실 것이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선한 포도밭 주인에 비유하신다.

주인은 각기 다른 시간에 일꾼들을 모아

일을 시킨 뒤 늦게 온 사람이든

 일찍 온 사람이든 모두 똑같은 품삯을 준다.

이에 일찍부터 일한 사람이 불평하자

주인은 그에게 반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제1독서

<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5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6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8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9 그러니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10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복음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교회는 오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기념합니다.

시토회 수도자였던 그는 중세의

 사랑의 신비 신학의 정점을 이룹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그의 업적과 위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베르나르도는 수도회 신학을

최고 수준으로 고양시켰을 뿐 아니라,

인간의 개별성과 존엄성,

자기 성찰과 풍부한 감수성 등

12세기적 심성의 여러 요소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명상과

 기도를 뒷받침하는 계기로 정립하였다”

(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에서).
특히 구약 성경의 ‘아가’에 대한

그의 해석과 통찰은 큰 중요성을 지닙니다.

그는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초기 교부들의

우의적이면서도 신비적인 해석을

 이어받아 꽃을 피웠고,

후대의 위대한 신비가들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이 열렬히 추구해야 하는

신적 사랑과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다시 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지향과 감정과

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피조물은 사랑을 통해서만

창조주께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신랑의 사랑은,

곧 사랑이신 신랑은

그 보답으로 단지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보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 자체께서 사랑받으시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 사랑의 원천으로 향하고,

그 사랑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사명임을 베르나르도 성인과 함께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