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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1 조회수1,20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8월 21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My friend, how is it that you came in here
without a wedding garment?'

(Mt.22,12)

 

 

제1독서 에제 36,23-29
복음 마태 22,1-14


제가 오늘부터 9월 1일까지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모두들 편안히 주님 안에서 함께 하시고요... 저 역시 기도 중헤 함께 하겠습니다.

종종 신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신학생들을 만납니다. 물론 사제의 길만이 무조건 행복한 길은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사제 성소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혼 성소 역시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으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5년째 성소국장을 하면서 이러한 결정을 하는 학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니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에서 결정한 학생들은 다른 길을 가더라도 정말로 잘 삽니다.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자신의 일터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의 상태에서 결정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그리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후회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 탓도 참 많이 합니다.

개개인의 차이도 있겠지만, 참 놀라운 것은 마음에 평화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발견한 뒤에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늘 ‘마음의 평화’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게 됩니다.

하긴 부활하신 예수님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평화’였지요.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바른 판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를 가지고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급하게, 정신없이, 대충의 마음으로 부르심에 응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핑계를 대고 잔치에 오지 않으며, 심지어 초대를 위해 보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지요. 그 잔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지 않아도 되는 잔치, 별 것 아닌 잔치, 그래서 무시할 수 있는 잔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임금의 진노를 사서 큰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임금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 부르심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을까요? 세상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내 욕심을 채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무시하고 때로는 불평불만을 던지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즉, 평화를 잃고서 주님을 따르지 않겠다고 외쳤던 것은 아닐까요?

내가 필요할 때에만 ‘주님! 주님!’하고 외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늘 부르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평화를 먼저 찾으십시오. 평화로운 마음에서는 주님의 부르심을 절대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 패배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불운이라 부른다(로알 아문센).


 

대화의 명수(‘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날 데일 카네기는 모임에서 만난 유명한 식물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듣기만 했다. 연신 “아, 네.”라는 말만 반복하며 식물학자의 말에 추임새만 넣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하고 덧붙일 뿐이었다. 그러면 식물학자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설명했다. 카네기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열심히 이야기하는 식물학자에 대한 예의로 몇 시간 동안 묵묵히 들어 주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카네기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식물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 또한 감사합니다.”

식물학자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카네기가 대화의 명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대화의 명수라니,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는 수소문 끝에 진원지를 알아냈다. 모임에서 만난 식물학자가 지인들에게 카네기가 말을 잘한다고 한 것이다. 졸지에 그는 대화의 명수가 되었다.

그 후 카네기는 말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의 이야기도 열심히 들었다. 때로는 말보다 경청이 믿음과 신뢰를 준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좋은 청취자가 되라. 상대가 자신에 대해 말하도록 격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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