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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병 환자인 나아만을 나는 어떻게 보는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3 조회수690 추천수2 반대(0)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나병 환자인 나아만을 나는 어떻게 보는가?

 

2열왕 5장에서 보여주는 나병 환자인 나아만은 어떤 사람인가?

나병 환자인 나아만은 군대 장수였고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고 한다.

또한 나아만은 자신의 부하들과도 관계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부하들은

나아만을 '아버님'이라고 불렀고, 나아만은 부하들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열왕 5,13 참조)

 

그렇다면 2열왕 5장을 통하여 나아만이 걸린 나병은 어떤 모습으로 그의 삶에 드러나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오늘은 나아만이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는 나병

환자의 모습과 그 나아만을 나는 어떻게 보고 살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보려고 한다.

 

나아만은 그 소녀가 알려 준 대로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예언자를 만나러 떠났다.

이 과정에서 나아만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묵상해 보게 되었다.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9절)

이 모습을 보고 ...

아, 자신의 나병을 치유받으러 오는데 꼭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올 필요가 있을까?

아, 어쩌면 나아만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과시욕이 큰 인물인가보다.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그런데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서 와서 서 있는 나아만에게 엘리사

예언자는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새살이 돋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자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

였다."고 한다. 그저 물에 씻어서 낳을 것 같으면 다마스쿠스의 강 아라바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느냐? 그러면서 화를 냈다.

 

나아만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이것이 바로 나아만의 나병이라고 느껴져 왔다.

내가 누군대! 자신의 명예에 합당한 대접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람.

그냥 심하게 표현하면 교만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엘리사 예언자가 시키는 그대로 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나병이 치유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

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내려갔다는 표현에서 느껴온 치유였다.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글 때 ...

역시도 일곱 번 물에 내려갔을 것이다. 물에 잠기기 위해서 내려가지 않았겠는가?

요르단 강에 내려감, 그리고 물에 잠기기 위해서 내려감...

그렇게 나아만은 내려감을 통해 치유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나아만을 그동안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살았는가이다.

나아만을 묵상하면서 나병에 걸린 사람이 임금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부하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이번 묵상을 통해 깨달은 것은 ...

누군가가 나병에 걸린 사람이라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병 환자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우리들이 걸린 나병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그런 가라지

같은 나병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통해 묵상해 본 바로는 ...

 

나도 어떤 때는 정말 나병(가라지) 환자의 모습을 살아내 보이기도 하지만 ...

어떤 때는 밀의 모습을 살아내 보이기도 하였음을 보았다.

 

누군가 어떤 이가 살아낸 밀의 모습을 막 칭찬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

에이, 그렇지 않아! 그러면서 그가 나병(가리지)의 모습을 살아내었던 그 모습을 이야기

해 주었다. 마치 그의 온 삶이 나병(가라지) 환자의 삶이라고 ...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이번 나아만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 누구도 온 삶이 다 나병(가라지) 환자의 삶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살아낸

밀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가끔 나병

환자의 모습을 살기도 하지만 밀의 모습도 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의 사람의 말씀에 순명하여 내려감을 체험할 수 있다면 ...

그는 참으로 구원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려감...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처럼 ...

 

"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주님,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고 섬기는 자로 거듭나는 은총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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