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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의 눈을 받은 이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4 조회수927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1주일



<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복음: 마태오 16,13-20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그리스도의 눈을 받은 이들>

        


  

아주 먼 옛날, 앞을 못 보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눈으로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이것이 그 소경의 소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그 소경의 집에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경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난 아저씨의 소문을 듣고 아저씨를 도우려고 찾아왔어요. 나는 밤에만 활동하니까 낮에는 눈이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낮 동안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게요. 그러나 밤에는 꼭 돌려주셔야 돼요.”

다음날 아침 소경이 깨어보니 세상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눈을 빌려준 부엉이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부엉이와 생활을 하며 낮에는 소경이, 밤에는 부엉이가 눈을 달고 먹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소경의 마음에 은근히 욕심이 생겼습니다.

부엉이와 눈을 함께 쓰는 바보가 어디 있담.’

그리고는 소경은 부엉이가 잠든 낮에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눈이 희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소경은 다시 더듬거리며 부엉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나를 버리고 가셨어요. 난 밤에 먹이를 찾지 못해서 굶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 눈도 기운을 잃은 거예요.”

이 말을 마치고 부엉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한없이 후회하며 엉엉 울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눈뜬장님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지나치게 어떤 것에 집착하게 될 때 본질을 왜곡시켜 보거나 아예 보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너무 정신이 없으면 아기를 업고도 하루 종일 찾아 헤맨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다 눈뜬장님이었습니다. 행복이란 것이 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으로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모든 것들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것들이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참 행복의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눈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을 가지지 못했던 소경에게 진흙으로 눈을 만들어 넣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로암 연못에서 눈을 씻은 뒤 새로운 눈이 생겨 제대로 보게 된 이 사건을 교부들은 우리 개인의 세례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영적인 눈으로 태어나는 것이 세례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주셨기 때문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눈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보인다고 하는 이가 참으로 장님이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이만이 올바로 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그 눈이 그리스도의 것이었음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셔야 한다는 말을 하셨을 때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분을 나무랍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넣어주신 영적인 눈은 다시 교만해지고 죄를 지으면 잃게 됩니다. 다시 세상의 영화가 최고라고 보게 되고 십자가가 저주받는 것이라 믿게 됩니다. 벳사이다에서 눈을 띄워주시고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죄를 지으면 그 눈을 다시 잃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눈을 잃지 않으려면 오늘 예화에서처럼 그 눈을 주신 분에게 돌려드려 영양분을 얻게 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죽게 되면 나에게 넣어주신 눈도 죽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뜻이 아닌 내 뜻을 따르는 것이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또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그 눈을 다시 에너지를 얻기 위해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여 우리는 매번 우리 힘으로 살려고 하다가 또 다시 장님이 되어버립니다. 다시 이 세상 삶에 집착하게 됩니다. 넓은 집을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해서 평생을 고생하지만 그것을 얻고 느끼는 행복이 한 달 이상 가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행복임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면 장님일지라도 길을 잃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월호가 많은 사람을 태운 채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바로 사태를 파악하고 탈출을 지시만 했어도 모두가 살 수 있었음에도,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승객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배의 선장을 기억합니다. 그 선장은 나와서 젖은 돈을 말리는데 바빴습니다. 소경을 우두머리로 삼고 그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안전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겐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만약 해적 선장이 이끄는 배에 탄다면 그 선장이 이끄는 대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배에서 아무리 착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배에 탔으면 해적입니다. 교회 또한 한 명의 선장을 두고 같은 배에 탄 공동운명체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며 거기에서 절대 장님이 될 수 없는 그래서 오류가 없는 선장을 지정해주지 않으셨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본성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제대로 알아볼 눈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저 예언자 중 한 명으로밖에는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들보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는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만이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올바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네가 나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네가 그럴 수 있는 눈일 가져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 눈을 넣어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하느님의 본성을 알아볼 수 없고 오직 주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그 볼 수 있는 눈을 주셨다는 것을 보시고는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특별히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완성된 교회는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로의 길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명이라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어떻게 하느님 나라로 교회를 이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세우신 교회 안에는 하느님께서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올바로 볼 수 있는 한 명의 목자를 세우심으로써 길을 잃거나 분열되지 않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교회라는 배가 난파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지켜보는 선장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베드로가 죽는다고 교회 안에 더 이상 볼 수 있는 선장이 없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올바로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베드로가 죽어도 하느님께서 볼 수 있는 눈을 계속 넣어주시는 교회의 수장이 있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님들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은 믿을 교리와 같은 영적인 눈이 필요할 때에 하느님은 특별한 은총으로 교황의 결정에 오류가 없도록 섭리하십니다. 교황님을 우리의 선장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분이 키를 돌리면 그 방향으로 같이 갈 수 있어야만 교회라는 한 배에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은 교황님뿐입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수장이 누구인지를 구별하고 그 수장이 이끄는 대로만 쫓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참 행복한 시간을 지냈습니다. 우리 교회를 이끌도록 우리 목자, 우리 선장으로 뽑아주시고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넣어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를 어루만지고 위로하시고 희망을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분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분이 비록 교리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오류가 없게 하실지라도 하느님께로부터 최고의 은총을 받고 있는 분이십니다. 해적선에 탔다면 누구나 해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황님이 이끄시는 배에 탔다면 내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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