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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배티 성지, 기쁨을 원하십니까?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4 조회수594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쁨을 원하십니까?

기적수 나오는 곳 - photp by 느티나무 신부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많이 따라다닌 이유가 뭘까요?

①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믿고 ②말씀이 너무 좋아서

③인물이 잘 생겨서 ④노래를 너무 잘해서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서

물론 이 다섯 개는 답이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 치유기적 때문입니다.

 

기적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입니다.

암이 낫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다릅니다.

‘신앙의 신비여!’

사제가 축성하기 전이나 축성 한 후나 그냥 밀가루빵입니다.

 

사람들은 신비 때문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적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닌 겁니다.

 

오늘 복음에 남자가 5000명이라고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여기에 곱하기 3을 해야 합니다. 아마 넓은 풀밭에 15000여명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20절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자세히 나옵니다.

예수님은 왜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적을 보여주신 겁니다.

 

예수님은 먼저 치유를 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처럼 굳은 마음을 여신다음

그 다음에 치유를 하십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육신의 치유를 갈급해 하십니다.

집안 식구 가운데도 환자가 있어 대신해서 기도하러 오신 분도 계십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육신의 치유도 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영의 치유입’니다.

 

2000전에 하혈하던 그 여인, 아직 살아있습니까?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나자로도 아마 다른 병으로 죽었을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치유는 영적인 치유입니다.

영의 치유가 일어나면 덤으로 주는 치유가 육의 치유입니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짜증내고 마지못해 하면 영이 닫히고 육이 닫힙니다.

사제에게 따뜻한 말 듣는 것과 차가운 말을 듣는 것은 분명히 다를 겁니다.

 

제가 아는 어느 수녀님이 말기암 진단으로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간병하던 수녀님이

“신부님, 저 수녀님이 보는 의사마다 나 죽으면 안 된다고 살려달라고 하시니 민망할 지경입니다.

수도자가 저렇게 죽음을 못 받아들이시니 그 집착을 좀 끊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런 부탁을 받고 들어갔는데 그 수녀님은 생명이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었어요.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임종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간병인들은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성당을 짓느라고 늘 피곤과 돈에 찌들어 힘들어 하고 분노하고 있을 때

같은 본당에 계시던 어느 수녀님의 얼굴은 늘 평화로 넘쳤습니다.

“수녀님, 얼굴에 평화가 넘치고 행복해 보이시는 비결이 뭡니까?”

“신부님, 제 행복의 비결은 절대자 하느님 앞에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아,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부평초처럼 떠돌기 때문이구나!

저 성전이 지어진다고 한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수녀님이 내린 행복의 비결 첫 번째가 순명의 닻이었습니다.

제가 어렵고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드렸을 때도

수녀님은 항상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순명하셨습니다.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산다는 망덕의 핵심은 순명이었던 것입니다.

 

행복의 두 번째 비결, 봉헌의 닻이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순명의 닻과 봉헌의 닻을 내리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먹였으면 좋겠다......”

“예수님, 어떻게 20데나리온을 가지고 저 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부정주의자, 과거지향주의자 필립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예수님, 제가 한 번 나가서 찾아볼게요. 먹을 것 가지고 계신 분 계세요?”

그때 아이 하나가 “여기 보리빵과 물고기 두 마리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그 빵과 물고기를 가지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자 빵이 한도 끝도 없이 나와요.

 

예수님의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인 오병이어의 기적은

안드레아의 순명 +소년의 봉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순명과 봉헌이 합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봉헌이라고 하는 것은 포기하는 겁니다.

봉헌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닻을 내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호주에 피정을 갔는데 어느 자매님이 호주에 유학 왔다가 그곳에 사는

1.5세대와 결혼을 했답니다. 시부모와 같이 살았는데 그 자매는 호된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아버지가 정말 미웠대요.

믿었던 남편마저 편도 안 들어주고 이혼하기 직전이었어요.

제가 그 자매에게 해준 이야기의 핵심은 봉헌과 포기라고 했지요.

 

몇 달 후, 그 자매에게 편지 한 통이 왔는데 내용은

(신부님 이제 알았습니다. 행복은 포기하는 것만큼 온다는 것을.....

시아버지 커피 끓여드릴 시간이네요.)

 

여러분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고 기쁨이 없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내가 애착하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일어납니다.

 

기쁨을 원하십니까?

욕심의 마지막 한 조각을 내려놓으십시오.

암이 낫기를 원하십니까?

암까지도 몸의 일부로 끌어안고 사십시오.

암 가진 채로 남들만큼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교만한 포기가 아닌 주님께 드리는 겸손한 봉헌입니다.

주일을 얼마나 봉헌하는 마음으로 사십니까?

하루의 기도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바치십시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항상 봉헌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십시오.

행복은 봉헌하는 만큼 옵니다.

 

모든 고통과 병도 봉헌으로 바칠 때, 치유와 평화와 마음의 기쁨이 옵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반석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뭐겠습니까?

시편의 말씀대로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그 빛을 잃고, 절망스런 환경에서도

하느님은 우리의 은신처가 되어주신다는 이것이 바로 참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은혜로운 성체성사, 그리고 성모님의 평화에 매달릴 때,

우리는 분명히 영적인 치유를 받습니다.

 

우리들은 감각적인 은혜를 청합니다. 물론 주십니다.

복을 달라고, 병 낫게 해 달라고~

명심하십시오.

육신의 치유는 영적인 치유가 이루어졌을 때, 덤으로 주시는 겁니다.

 

몸이 아플 때, 먼저 하느님께 이렇게 청하십시오.

주님 제 영을 치유해 주십시오!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성령이 하루 종일 내 안에서 지배하게 해 주십시오!

성모님의 마음으로 내 자식 돌보게 해 주십시오!

성모님의 마음으로 예수님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참행복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수혜자가 아닌

천국문의 계단을 밟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영의 치유를 청하십시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4. 8월 2일 배티은총의 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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