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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6 조회수989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Blind fools, which is greater, the gold,
or the temple that made the gold sacred?
(Mt.23,17)
 
 
제1독서 2테살 1,1-5.11ㄴ-12
복음 마태 23,13-22
 

여러분들도 아시듯이 현재 성모 발현지 성지순례 중입니다. 지금은 반뇌를 떠나 프랑스 파리를 거쳐 루르드에 와 있습니다. 아직도 성지순례의 일정이 많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참 많은 주님의 사랑 특히 성모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은총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만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네요. 아무튼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참, 이곳 유럽의 인터넷 사정이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묵상 글 올리는 데에도 제약이 참 많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떤 새끼 고양이가 자기 꼬리를 잡기 위해서 계속해서 한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엄마 고양이가 묻지요. “얘야, 지금 뭐하고 있니?” 이에 새끼 고양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아까 친구 고양이를 만났는데 글쎄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빙글빙글 돌고 있더라고여.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 꼬리를 잡으면 행복을 잡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왜 꼬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행복해지고 싶거든요. 그래서 저도 친구처럼 제 꼬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자 엄마 고양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돌지 말고 그냥 앞으로 걸어가렴. 그냥 앞으로 가기만 하면 저절로 꼬리는 너를 쫓아온단다. 하지만 잡으려고 하면 잡지 못하고 계속 돌 수밖에 없지.”

어느 동화책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우리들,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에 충실하면서 특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행복이 나를 졸졸 쫓아 올 텐데, 자신이 직접 행복을 잡으려고 하기에 힘들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만 행복을 잡지 못하고 빙빙 돌면 그만인데, 남들도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앞서 친구 고양이가 행복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쓸데없는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면서 함께 그릇된 길로 가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 ‘불행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왜 불행합니까? 그들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을 잘 인도하고 잘 가르쳐야 하는데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그리고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시켜 줄 것들에게만 신경을 쓰다 보니 주님의 길을 걷지 못하고, 또 사람들도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이들을 주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 자리에서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밖에 없는데, 다른 것들이 중요하다며 사랑을 외면하고 남들에게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합리화. 우리들의 가장 큰 유혹꺼리입니다. 합리화를 통해 나는 맞고 남은 틀린 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합리화에서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하나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둥이 약하면 집이 흔들리듯 의지가 약하면 생활도 흔들린다(에머슨).강렬한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마더 테레사).


 

주님을 닮는 삶.

지난 교황님 방한 때에, 명동에서 교황님과 함께 하는 평화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오셨는데, 제가 신학생 때 가르쳐주셨던 은사 신부님 그리고 선배 신부님들을 많이 뵐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반가웠지요.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왜 이렇게 늙으셨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시간 계산을 해보니, 20년 만에 만남입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도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네요. 아무튼 저는 친했던 선배 신부님을 뵙고 “항상 청춘이신 줄 알았는데, 신부님도 많이 늙으셨네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도 저를 향해 이렇게 대답하시네요.

“남 얘기 하지 마라. 너도 만만치 않아.”

그러네요. 자기 자신은 나를 잘 모르지요. 내가 항상 데리고 다니는 내 몸뚱이도 잘 모르면서, 남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을까요? 늘 겸손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또한 자기도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해 말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함도 깨닫습니다.

주님을 닮으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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