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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30 조회수850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8월 30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Well done, my good and faithful servant.
Since you were faithful in small matters,
I will give you great responsibilities.
Come, share your master's joy.
(Mt.25,23)
 
 
제1독서 1코린 1,26-31
복음 마태 25,14-30
 

이제 성지순례도 거의 끝나갑니다. 오늘 하루 순례를 하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면 모든 일정이 끝나게 되지요. 10박 12일이라는 시간이 꽤 길다고 생각했는데, 순례의 막바지에 서 있는 지금 그 시간들이 참 짧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바쁜 일정을 쫓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짧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요.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이 짧다고 말하는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시간이 참 가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중세의 많은 성인들은 게으른 사람이 지옥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긴 무지와 겸손을 다르다고 하지요. 어떤 사람은 전혀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저도 잘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전자는 무지이고, 후자는 겸손인 것이지요. 그리고 무지한 사람이 바로 게으른 사람입니다.

사실 겸손과 무지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면서 정작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과연 주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의 길에서 가장 먼 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도 이러함을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인을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능력껏 탈렌트를 줍니다. 종들은 자신이 받은 탈렌트를 활용해서 두 배로 늘립니다. 그런데 한 종만이 이 탈렌트를 땅에 묻고는 나중에 받은 한 탈렌트 그대로를 돌려 드립니다.

‘손해 보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종이 손해 보지 않도록 했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미 종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탈렌트를 능력껏 배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배분이 종들의 평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탈렌트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탈렌트를 가지고 어떻게 행동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할 때 내 자신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능력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우리들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주신 그 탈렌트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보고 계시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당신의 뜻에 맞게 노력하며 살고 있는가를 따지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이 결국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졌음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받는 탈텔트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재능을 찾기까지 행동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조지 루카스).


 

거지의 기도

유럽 성지 순례를 다니다보니,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특히 성지 주변에 많더군요. 그들이 구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배고프기 때문에 구걸을 합니다. 만약 이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구걸을 할까요? 구걸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서 대신 베푸는 입장에 설 것입니다.

이들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늘 구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주셨으면서도 불구하고,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서 늘 더 내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거지의 기도만 바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께로 받은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 절대로 거지의 기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대신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되지요.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그 모든 것, 또 앞으로 내려 주실 그 풍성한 은총에 감사의 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바치고 있는 기도를 한 번 바라보세요. 혹시 계속해서 거지의 기도만 바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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