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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4년 9월 3일 수요일 복음 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3 조회수889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4년9월3일 연중22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루카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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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오후, 굉음과 함께 나무들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사제관을 흔들어댑니다.
성모동산 뒤편에 있던 벚나무 가지들 잘리는 소리입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길가로 늘어진 가지들을 잘라달라는 이웃의 민원이 들어와, 고심한 끝에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성당 뒷문 곁에 있는 소나무는 아예 없애야만 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고도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몇 십 년이 넘은 수령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을,

그 어떤 죄도 없는 녀석들이 인간의 기호에 의해 잘리거나 죽어야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처리해달라고 불만을 이야기한 분의 요구는 간단했습니다.
나뭇잎들이 떨어져 청소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그런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눈에 보일 때마다 열심히 나뭇잎들을 쓸어 담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불만을 이야기한 분의 집 뜰과 담장 쪽을 살짝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쁜 나무들과 꽃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
나이가 들수록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한 마리의 생명에도 신경이 쓰입니다.
버림받은 고양이나 강아지들을 보면 그리도 안타까울 수가 없습니다.
모든 어리고 작은 생명들이 그리도 사랑스럽고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한철 서럽게 울어대던 매미가 땅바닥에 떨어져 떠날 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자동차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옮겨주곤 합니다.
성당에서 아이들이 벌레나 풀을 가지고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것이 눈에 띄면,

생명을 귀하게 여기도록 잘 이해시켜주는 편입니다.
육식을 좋아는 편이지만, 몇 년 전부터 심각하게 육식을 멈추어볼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란 없앨 수는 있지만, 잃은 생명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좀 더 모든 생명들에 대해 경이로움과 귀중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인간 중심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식하는 우리이기를 희망합니다.

둘.
누군가가 미워지면 그 누군가의 모든 것이 미워지는 것이 우리의 약한 모습 중의 하나입니다.
나무를 잘라달라고 한 그분은 아마도 우리 성당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주일이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성당에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소음은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늘 주차 문제로 몇 군데 장소를 빌려 주일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니 어수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국적 교회이다 보니, 언어문제로 이런저런 잡음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리기도 합니다.
주의를 하고 있지만, 전 신자가 모여야 되는 날은,

신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편하게 휴일을 보내기에는 불편을 느끼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사실 이곳도 60년 전에 성당이 세워진 후, 마을이 형성된 곳입니다.
허허벌판 땅을 사서 성당을 지었고, 그 이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연세 드신 분들께 들었습니다.

하여간 전후문맥 상관없이, 비신자인 성당 이웃들 입장에서는 성당이 그렇게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성당의 모든 것이 불편하게 보였을 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집과는 전혀 상관없는 벚꽃 가지와 소나무 잎이 눈에 거슬렸을 겁니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불편한 마음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생명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셋.
나는 개인적으로 화병에 들어있는 꽃들을 보면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가뜩이나 짧은 삶을 더 짧게 보내야 하는 것이 인간들의 욕구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모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을 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에 대해 좀 더 섬세한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생명은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넷,
마지막으로 성당 주변의 신자가 아닌 이웃들에게 어떻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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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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