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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을 위하여 등잔이 있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5 조회수1,145 추천수15 반대(0) 신고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 5,33-39

 





불을 위하여 등잔이 있다

 

 

새것과 헌 것은 충돌하게 마련입니다. 헌 것이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새것이 다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등잔을 위하여 불이 있지 않고 불을 위하여 등잔이 필요한 이치’입니다. 단식은 슬픈 일이 있어서, 뜻이 있어서 합니다. 슬픈 일이 없는데, 오히려 기뻐해야할 날에 단식을 하는 것은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단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분명히 해야 단식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묵은 것이 좋다하더라도 새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는 항상 준비되어있어야 합니다. 또한 새것은 묵은 것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5,37-38).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신들의 전통과 아집, 지식 때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새 시대가 왔으면 새 시대에 걸 맞는 좋은 것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모든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옛 것은 디딤돌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면 더 큰 성장과 발전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옛 것에 안주하여 마치 내 것이 전부인양 생각한다면 후퇴하는 것입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쉽게 노여움을 타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삶의 경륜과 지식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말에 동조하고 아첨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사목자들이 소위 구교신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곳에는 성직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남다르기도 하지만 아주 고집스런 분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의 부모나 친인척이 많아 어느 신부도 알고, 어느 수녀도 알고, 누구는 예전에 어떻게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다는 등 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정작 본인은 새 영세자만도 못한 신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틀 안에 갇혀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의 경륜을 보아서는 모두를 품을 것 같은데 그 속이 밴댕이요, 좁쌀입니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물러졌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거룩하고 엄격한 삶을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도 배려하면서 믿음의 쇄신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어머님께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당신이 전에 부르던 아우구스띠노는 이미 죽었고,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님과 함께 사는 아우구스띠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참 변화라는 것은 영적인 몸으로 변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님의 수난의 모습을 닮는 것이요, 영광으로 변하는 것입니다”(성 아타나시오). 새로운 가르침은 새로운 틀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모든 새로운 가르침은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는 가르침”입니다. 시련과 역경, 모든 혼돈 속에서 다시금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밥을 굶기 위한 단식을 하지 말고 근본을 회복하는 단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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