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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문화사에 따른 전례: 각종 전례서의 출현(4-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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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10 조회수480 추천수0

[문화사에 따른 전례] 각종 전례서의 출현(4-8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 이후에 그리스도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4세기가 시작될 무렵 5천만 또는 6천만 명이 살았던 로마제국에서 최소 10%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계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그 전에 가정 중심의 교회에서는 불필요했던 계획과 조직을 요구하게 되었다. 나아가 수많은 교리 논쟁이 생기고 신학적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공적 전례는 새로운 수준의 정확성을 요구했다. 3세기까지의 즉흥성의 시대는 지나가고 어느 정도 형태를 이룬 전례 텍스트의 시대가 왔다. 여기서는 4~8세기에 형성된 전례서들의 유형을 알아본다.

 

 

안티포나리움과 성가집

 

로마에서 미사 고유문을 위한 성가 텍스트 또는 입당, 독서 사이, 봉헌 행렬, 그리고 성찬례 때 부르는 전례문을 담은 책들이 만들어졌다. ‘교송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사 안티포나리움(antiphonarium)은 입당과 성체 행렬을 하는 동안 시편의 구절과 구절 사이에서 불린 성가의 모음집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무일도에서 교송으로 하는 성가를 모은 ‘성무일도 교송집’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모음집이 8세기 초반에 로마 밖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도 있다.

 

성가집(cantorinus)은 독서와 독서 사이에 홀로 불렸던 성가(층계송과 연송, 알렐루야 독창부)를 담고, 때때로 봉헌을 위한 독창부도 실었다. 성가집의 프랑크 왕국식 명칭은 층계송(graduale)이다. 이 명칭은 그라두스(gradus, ‘계단’이라는 뜻)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이유는 독서와 독서 사이에 선창자가 층계 위에서 성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은 층계에서 부르지 않기에 층계송이 아닌 ‘화답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성경 독서에 관한 최초의 전례서 카피툴룸

 

전례 발전에서 구약성경, 서간, 복음서 낭독은 성찬례 거행의 전통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본디 독서는 성경 전체를 선포하는 행위였을 수 있다. 5세기나 6세기 이전에는 성경 독서에 대한 분명한 지시 사항이 없었다. 성찬 기도의 즉흥성과 마찬가지로, 지역 주교의 주의 깊은 감독 아래 성경 독서의 선택과 독서의 개수에도 현저한 다양성을 보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는 전례용으로 50권의 필사본을 제작토록 했다. 본디 전례용 성경에는 페이지 여백에 기호나 표시가 있었다. 독서의 시작과 끝을 지시하려는 이유였는데, 장과 절로 나뉘지 않았던 당시 성경의 낭독 부분을 명시하는 데 비교적 효과적인 도구였다. 중세 후기가 되어서야 성경은 장과 절로 나뉘었다.

 

이러한 여백 표시 외에도, 낭독 표기를 위한 두 번째 도구는 카피툴룸(capitulum)이라고 불렸던 목록이었는데, 대개 날짜, 전례 축일, 전례 거행 장소, 읽어야 할 부분이 있는 성경의 책, 그리고 각 독서의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을 적어 놓았다.

 

에릭 팔라초는 「초기 교회부터 13세기까지의 전례서의 역사」(A History of Liturgical Books from the Beginning to the Thirteenth Century, 1998)에서 카피툴룸의 세 가지 유형을 구분하였다. 첫째 카피툴룸 유형은 낭독해야 하는 서간들을 열거하는데, 이는 나중에 서간집(epistula)으로 발전한다. 둘째 카피툴룸 유형은 낭독해야 하는 복음 부분을 규정한다. 뒤에 복음집(evangelium)이 된다. 셋째 카피툴룸 유형은 앞선 두 유형을 합친 것으로, 기본적인 미사 독서집(lectionarium)의 기원이 된다. 현존하는 서간과 복음 카피툴룸은 6세기 것으로 아마도 5세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경본의 기원인 미사 소책자와 성사집

 

최초의 전례서는 책이라기보다는, 손으로 작성한 팜플렛에 가까웠다. 처음에 이러한 ‘미사 소책자’(libelli missarum)는 특정한 교회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미사에 대한 본기도와 감사송을 포함했다. 때때로 몇 권의 이러한 소책자를 모아 모음집을 만들었고, 이러한 모음집들이 4세기 말 무렵에 그리스도교 특정 지역에 존재했다.

 

6세기 말에 그 책자들을 모아 만든 모음집은 ‘레오 성사집’이라고 불렸지만, 사실 대 레오 교황(440-461년 재임)의 작품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로마의 명의 본당(본당 사목구 성당의 전신) 사제들이 사용할 수 있게 교황 전례의 자료들을 차용하여 만든, 사제 전용 전례 양식문과 기도 모음집이었다. 현재는 이 필사본이 보관된 도시의 이름을 따서 ‘베로나의 리벨리 미사룸 모음집’이라 하고 보통은 ‘베로나 성사집’으로 부른다.

 

성사집(sacramentarium)은 집전자가 성찬례나 다른 전례 예식에서 필요로 하는 기도문을 담은 책이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최초의 성사집은 ‘옛 젤라시오 성사집’인데, 그 제목은 젤라시오 1세 교황(492-496년 재임)이 저자라는 실증할 수 없는 가설에 근거해서 붙여졌다. 이 작품은 본디 로마에서 628-715년 사이에 편찬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두 유형의 성사집이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교황 전례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의 본당 사제가 전례를 집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옛 젤라시오 성사집’은 후자 쪽에서 기원했지만, 교황 전례의 요소도 전체적으로 포함한다.

 

 

프랑크 왕국에 보내진 그레고리오 성사집

 

유명한 또 다른 성사집은 ‘그레고리오 성사집’이다. 많은 학자가 수용하는 견해에 따르면 수많은 필사본은 하나의 동일한 원천, 곧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년 재임)의 이름을 붙인 성사집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실은 호노리오 1세 교황(625-638년 재임)이 편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과 비교하여 세 가지 큰 특징으로 구별된다. 첫째,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각 권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둘째, 봉헌 기도(예물 기도) 앞에 단 하나의 기도문(본기도)만 있다. 셋째, ‘순회지’(statio), 곧 교황이 특정 전례일에 순회 미사를 거행하는 성당을 축일명 아래에 밝혀 놓았다.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하드리아노(772-795년 재임)가 샤를마뉴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에게 보낸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원본을 필사한 것들이다. 샤를마뉴는 프랑크 왕국의 실정에 맞게 적응시키고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프랑크 왕국에 적응된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보충판’이 만들어졌고, 이는 뒤에 ‘총미사경본’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은 앞에서 다룬 ‘옛 젤라시오 성사집’을 그 원천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성사집과 동일하게, 로마에서 알프스 산맥 이북으로 옮겨져 그 성사집을 받아들인 지역 교회의 실정에 맞추어 매우 광범위한 적응의 과정을 겪게 된 성사집들이다. 이렇게 젤라시오 성사집을 바탕으로 복잡한 혼합의 과정을 거친 성사집들을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 윤종식 티모테오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였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시복 미사 때 전례 실무자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꼭 알아야 할 새 미사통상문 안내서」가 있다.

 

[경향잡지, 2021년 2월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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