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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5 조회수1,080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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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5 연중 제22주간 금요일(순례17일차), 1코린4,1-5 루카5,33-3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바오로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참 자존감 높고 존재감 강한 바오로입니다. 

어제는 순례17일차, 
산토도밍고에서 벨오라도까지 22.4km, 
아침 6:20분에 출발하여 2번 쉬고 11:30분, 너무 빨리 도착했습니다.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지 주변을 감상하며 걸어도 빠른 걸음이니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몇몇 깨달음의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참 넓은 자급자족하고도 넘치게 남을 축복 받은 스페인입니다. 
나라 전체가 역사 박물관 같고 잘 가꿔진 정원 같습니다. 

버려진 땅이 없어 버려진 사람도 없어 보입니다. 
낙천적이고 정열적이며 부지런한 민족 같습니다. 
어디나 비슷한 모습으로 널려 있는 드넓은 밭입니다. 

그동안 모르고 썼던 말이 너무 많습니다. 
새삼 깨닫게 되는 많은 말마디입니다. 

예를 들면 양냄새, 지평선, 순례자, 도반, 여정, 길 등 수없이 많습니다. 
양무리 곁에서 물씬 풍겨나는 양냄새를 맡으면서 교황님의 양냄새 나는 목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동안 말한 것을 몸으로 깨달아 알라고 하느님 주신 안식년 순례기간입니다. 
깨달아 알면 지혜와 힘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지식의 짐이 되어버립니다. 
마치 먹고 가면 넘치는 힘으로 가뿐히 갈 수 있는 음식물의 짐을 
먹지 않고 지고 가는 경우와 흡사합니다. 

맑은 공기, 밝은 햇살, 파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아득한 지평선을 배경한 대지가 흡사 제대 같습니다. 
길 양편에는 수확이 끝난 밀밭이고 한쪽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밭이니 
그대로 대지 제대 위에 놓여있는 빵과 포도주의 상징입니다. 

'아, 주님은 일상의 싸고 흔하나 필수적인 것을 당신 몸과 피로 삼으셨구나' 

깨닫게 됩니다. 
문득 예수님과 함께 대지 제대 위에서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움직이는 수도원이고 움직이는 교회이다. 
내 안에 숨어 계신 주님이시다. 
바로 이것이 내 자존감, 존재감의 비밀이다.'라는 깨달음도 힘이 됐습니다. 

사정상 먼저 귀국한 도반의 카톡 메시지도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신부님,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먼저 혼자 오니 죄송합니다."

순간, '아, 나는 집이 없네.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산티야고가 상징하는, 
우리 평생 순례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이 떠올랐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둥우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 조차 없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음 시리게 와 닿았습니다. 

렇습니다. 
하느님이 고향집입니다. 
지상의 집이 영원히 머물집이 아님은 죽음을 통해 담박 들어납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 하느님이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이런저런 깨달음이 자존감 높은, 존재감 강한 겸손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런 이들은 남을, 자신을 심판하지도 않고 주변의 심판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바오로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바오로처럼 자존감, 존재감 좋은 이들은 결코 남을, 자신을 심판하지 않고 주님께 맡깁니다. 
그분께서 오실 때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길 것이며, 
그때에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자존감, 존재감 약하고 열등감 클 때 질투와 시기에 무분별한 심판입니다. 
사사건건 붙잡고 늘어집니다. 
바로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러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자존감, 존재감이 최상의 경지에 이른 예수님의 대응이 참 통쾌하고 멋집니다.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이들의 예봉을 무력하게 합니다. 
비유의 결론인즉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선사되는 새 포도주의 무수한 새 현실들을 담아내기에도 부족한데 
심판할 시간이 어디있겠는지요. 
오히려 깨어 새포도주를 담아낼 수 있는 새 부대의 자존감, 존재감을 높이는데 노력할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자존감, 존재감 높은 삶을 살게하십니다.

"주님, 거룩한 잔치에서 천상 진미로 저희를 기르시니, 
참 생명을 주는 이 양식을 언제나 갈망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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