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47) 영성체 준비 : 주님의 기도 ① ‘주님의 기도’로 영성체 예식을 시작합니다. 교리서에 나온 것처럼 감사 기도와 영성체 사이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한편으로는 성령 청원 기도에 담겨 있는 청원과 전구를 요약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영성체로 미리 맛보게 될 천국 잔칫집의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770항). 먼저 사제는 우리가 하느님께 말을 건다는 것이 하나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이런 말로 알립니다.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이 초대에 교우들은 한 목소리로 주님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전통은 옛 유다인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마태 6,9-13; 루카 11,1-4)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구원으로 우리가 하느님과 맺게 된 관계를 강조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맺는 일치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아들 안에서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 가정 안에 있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어서 나오는 청원은 전통적으로 일곱 개로 나뉘어 이해되었습니다. 첫 세 가지는 하느님께 초점이 맞춰지고(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 나머지 네 가지는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입니다(저희에게 … 주시고,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구하소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성경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하느님 자체와 연결됩니다(창세 32,28-29; 탈출 3,14-15; 이사 52,6).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길 바라는 이 구절은 모든 이가 하느님과 그분 이름의 거룩함을 알게 해 달라는 청원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시고 하느님 몸소 모든 민족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이사 40,9-11; 52,7-10; 즈카 14,9.16-17). 이 구절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우리 자신부터 시작하여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 청원은 처음 두 청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느님의 뜻은 완전히 이루어지고,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며, 모든 천사와 성인들이 그분의 다스림을 소리높여 환호합니다. 이제 우리는 땅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전례 탐구 생활 (48) 영성체 준비 : 주님의 기도 ②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전례 탐구 생활 36. 예물을 바치며 드리는 기도’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성경에서 빵은 가장 기본적인 식량이자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품으로 나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청하는 “일용할 양식(빵)”은 우리의 일상을 맨 밑바닥에서 떠받쳐 주는 은총의 열매이며,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을 지탱해주었던 만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탈출 16,14-21).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하루치 분량만큼 하늘의 빵을 내려주셨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하루치 필요에 맞는 빵을 제공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조금 있으면 받아 모시게 될 생명의 빵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성체를 받아 모시기 전에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가 깨끗해져서 곧 우리 안에 사시게 될 예수님을 모실 거룩한 감실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 준 이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푼 만큼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14-15; 18,23-35).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심지어 누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러 제단에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먼저 자기 형제와 화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태 5,23-24).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시러 제단에 나아갈 때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우리 형제들과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는 숙제 앞에 서게 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이 청원은 삶의 모든 시련과 유혹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성경의 눈으로 볼 때 이 청원은 우리가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지켜 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우리의 힘을 키워주셔서 우리가 직면한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나자렛 예수」에서 이 청원을 다음과 같이 풀어 말씀하십니다. “저는 제 본성이 정화되도록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제게 여러 가지 시련을 보내시기로 하셨다면, 부디 제 힘이 겨우 이 정도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제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시험받게 될 영역을 너무 넓게 잡지 마시고, 시련이 제게 너무 크게 다가올 때 당신 손으로 저를 보호하시며 늘 가까이 계셔 주십시오.” 사도 바오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13). 악에서 구하소서: 성경의 눈으로 보면 이 청원도 우리가 모든 해악이나 불행에서 면제되길 바라는 기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악’은 도덕 질서에 반하는 추상적인 개념 또는 세상에서 무작위로 흔히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아닙니다. 악은 한 인격, 사탄,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타락한 천사, 다른 이들을 부추겨 하느님을 거스르도록 이끄는 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청원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손에서 구해주시기를, 사탄의 모든 거짓말과 활동, 그가 꾸미는 모든 함정에서 구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1년 5월 16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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