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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양의 자격, 목자의 자격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6 조회수978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3주일


<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복음: 마태오 18,15-20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양의 자격, 목자의 자격>

 

16세기 로마의 사도라 불리는 재속 사제로 오라토리오회를 창설한 필립보 네리의 일화입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거룩한 영성으로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녀를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녀원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사람을 시켜 그 수련 수녀를 오도록 했습니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 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습니다. 한 재속 사제가 진흙으로 범벅이 된 신발을 벗기라고 하니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시키는 사제를 판단하고는 자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수녀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와서는 교황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궁금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엔 성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 성인이 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이 마귀에게 속고 있다고 판단하여 신자들과 미사를 하지 못하게 여러 차례 교회가 막았을 때 그 교회의 명에 순명한 것이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 열쇠를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가 교황님입니다. 하늘 나라의 열쇠는 이 지상에서 쓸 수 있는 천상 하느님의 권력입니다. 하느님 외에 누가 하늘 나라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시면서 하신 말씀과 오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었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반면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분명히 하늘 나라의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제자들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만약 제자들 중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했다고 하여 그를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할 수 있을까요?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셨기 때문에 베드로를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들도 그 열쇠를 사용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일치하는 모든 제자들은 그 하느님의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들은 자신들의 주교로부터 그 권한을 부여받아 죄를 용서해 주고 미사를 거행합니다. 만약 사제들이 주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주교를 몰아내려 한다면 그 사제들은 주교와 일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늘 나라 열쇠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들은 하늘 나라 열쇠를 사용하여 이 세상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과 미사를 거행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본당 사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제를 파견한 주교와 교회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 질서가 무너지면 분열 외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교회에서는 파문이란 명목으로 이 권한을 사용하였습니다. 본당 사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교님만 따르면 되지’, 혹은 교황님만 따르면 되지’, 혹은 예수님만 믿으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아버지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니다. 예수님은 파견 받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는 파견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본당 사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주교를, 주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느님 아버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파견된 이는 파견하신 분의 권위를 행사하여 교회가 파문하면 하느님께서 파문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신자의 조건은 바로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겸손한 순종입니다. 사실 신자만 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들도 주교님도 그 위에 순명합니다. 교만으로 인한 불순종 때문에 죄와 분열이 세상에 들어왔다면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대한 순명, 성모님의 하느님께 대한 순명으로 구원과 일치가 세상에 오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본당에서 주교와 일치하여 성사를 베푸는 사제를 거부하려는 모습이 보이거든 그런 사람이 교회를 분열하는 양의 탈을 쓴 이리라 여기고 그를 조심해야 하고 교회에 알려야합니다. 교회의 본성은 일치이고 하나로 모이는 데 있고 사탄은 교만으로 교회를 갈라놓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을 마태오 복음 18장이라는 큰 그림에서 보면 비단 신자들만의 자격을 말씀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런 당신의 천상 권위를 행사하는 교회의 성직자들의 자격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18장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한 제자가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실 18장은 당신의 제자들, 즉 지금의 성직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인데, 오늘 복음은 그 중간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께서 하늘 나라의 문을 열고 닫는 권위를 주시기는 하셨지만 결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8장 첫 머리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란 소제목으로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라는 소제목이 등장합니다. 당신을 믿는 이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 하나라도 죄짓게 한다면 차라리 연자매를 목에 달고 깊은 바다 속에 빠져 죽는 편이 낫다고 하십니다. 또한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버리고,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손발을 자르고 눈을 빼어 버리는 성직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는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기보다는 성직자들 또한 죄를 지으면서도 그렇게 손발을 자르거나 눈을 빼어버리지도 않으면서 왜 신자들을 판단하려 드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성직자의 자격은 자신이 자격이 있어서 성직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성직자 또한 용서받는 한 사람에 불과하니 겸손해져서 누구도 업신여기지 말고 모든 신자를 자신과 같은 처지로 생각하고 그들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하여 당신께서 착한 목자의 모범으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뿐만 아니라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목숨까지 불사하는 모습을 본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등장하는 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어쨌거나 교회에 당신께서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기셨으니 그만한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일단 파문하면 이방 민족처럼 구원에서 제외지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권의의 영향력을 알고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길 잃은 이들을 데려와 무리를 만들어야지 흩어버리는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이어지는 말씀이 용서입니다.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가 먼저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교회의 수장이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앞으로 예수님을 배반할 것도 모르고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 또한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한 사람임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매정한 종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사제들 또한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용서받지 않으면 천국 문턱에도 갈 수 없는 인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해성사 보는 신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죄를 용서하기를 꺼려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성직자 또한 나중에 자신의 죄에 대한 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물론 신자들이 사제들을 미리 판단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게 판단하면 그 사람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 정원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 , 꽃 하나하나를 정성으로 가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아침에 정원을 나가 보니 모든 나무들이 시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문 옆에 서 있는 떡갈나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떡갈나무야, 무슨 일이 있었니? 도대체 왜 다들 시들어 있지?”

나무들이 서로 함께 있지 않으려 해요.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는데 열매도 못 맺는 소나무와 함께 있는 것이 싫고, 복숭아나무는 자신처럼 똑바로 서 있지 못하는 포도나무와 함께 있는 것을 원치 않으며, 라일락은 자신처럼 향기롭지 못한 나무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두 시들어 있는 중에도 유독 생기 있고 아름다운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꽃은 바로 팬지(Heart-peace)였습니다. 왕은 그 꽃에게 물었습니다.

팬지(마음의 평화), 다들 슬픔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데 너는 작은 꽃이 지만 꿋꿋하게 자라는 것을 보니 짐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 고맙습니다. 저는 원래 볼품이 없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왕께서 떡갈나무 나 소나무나 복숭아나무 혹은 라일락을 원하셨다면 저를 뽑아 버리고 그들을 심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왕께서 저를 심으신 것은 저를 보시면서 마음에 평화를 느끼기 위함이란 것도 알지요. 그래서 저는 왕께서 저를 보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시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왕은 이후로 더욱 팬지꽃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바로 겸손에서 옵니다. 그 겸손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고 모든 상황을 잘 받아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바로 양들과 목자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 자격은 둘 다 같은 것인데 바로 겸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겸손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게만듭니다. 신자는 교회를 받아들이고 교회는 신자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우리 모두의 자격은 겸손’, 그로인한 순명이것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 겸손을 가진 사람만이 참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어떤 처지에서도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휴 동안 강론은 쉬겠습니다, 좋은 추석 보내세요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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