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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6 조회수804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6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Why are you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Lk.6,2,5)
 
제1독서 1코린 4,6ㄴ-15
복음 루카 6,1-5
 

사람들이 제게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단 것을 잘 먹지 않거든요. 사탕도, 또 초콜릿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단 것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어렸을 때에는 저 역시 다른 어린이처럼 단 것을 참 좋아했었거든요. 어머니 몰래 숟가락으로 설탕을 퍼 먹기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긴 그 당시에는 단 것이 손님을 접대하는 기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맹물 한 사발에 설탕을 한 숟가락 타서 드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요즘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맹물에 설탕을 넣어드리면 어떨까요? 아마 욕먹기 십상이겠지요? 제 입맛이 단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역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옛날에는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현재에는 최악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과거의 관습에 얽매여 있을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의 관습이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그랬는데...’라는 이유로 또한 ‘남들도 다 그렇게 했어.’라는 말로써 과거에 갇혀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말씀 외에 영원한 진리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어쩌면 감히 주님의 영역을 침범하며 사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늘 겸손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참 진리는 주님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주님의 뜻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주님의 영광을 이 땅에 세울 수 있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바리사이들의 공격이 계속됩니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옳지 않다고, 즉 밀 이삭을 뜯어 추수를 한 것이고 손으로 비볐으니 타작 행위를 했기에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율법에만 매어 있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입니다. 율법의 기본은 사랑인데, 이들이 내세우는 율법은 사랑은 없어지고 대신 사람들을 옭아매는 억지와 부정적인 모습만 가득합니다.

과거의 관습만을 내세우고,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바리사이들의 이 모습들이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지 못하고, 나만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지요. 추석 연휴 동안 친척들을 비롯한 많은 만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만남에서 겸손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먼저 우선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기쁜 만남, 행복한 명절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깨진다. 그 뒤 많은 사람의 경우 깨진 부분이 단단하게 굳는다(헤밍웨이).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김진배, ‘내 인생을 바꾸는 유머 한 마디’ 중에서)

한 신사가 술집에 들어와서 스카치 두 잔을 주문했다. 그리곤 한 잔을 다 마신 후 나머지 잔을 마저 마시고 일어섰다. 한 달이 넘도록 똑같은 방법으로 술 마시는 것을 보고 마담이 물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손님, 어째서 두 잔을 한꺼번에 주문하시죠?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다른 한 잔은 얼음이 녹아 묽어져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신사가 대답했다.

“여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답니다. 내게는 늘 함께 어울려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친구가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약속했답니다. 누구든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은 반드시 두 잔의 스카치를 주문해서 한 잔은 먼저 죽은 친구의 명복을 빌면서 마시기로 했답니다. 내가 스카치위스키 두 잔을 주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랍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마담은 아주 감동했다. 그런데 다시 한 달쯤 지나고 나서는 한 잔씩만 주문하는 것이었다. 궁금해진 마담이 다시 물었다.

“왜 전처럼 돌아가신 분을 위해 한 잔을 더 안 시키는 거죠?”

“나는 이번에 의사의 권유로 술을 끊기로 했소. 이 술은 그러니까 친구의 몫이요.”

스스로 만든 원칙이겠지요? 스스로 만든 억지 원칙이 과연 맞는 것일까요? 억지 원칙이 아닌 보편적인 원칙. 특히 주님께서 제시하신 원칙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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