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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말과 모범으로 충고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7 조회수1,058 추천수12 반대(0) 신고




연중 제23주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 18,15-20





말과 모범으로 충고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강론 시작에 앞서 항상 ‘사랑합니다’하고 말문을 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입니다. 가끔은‘하늘만큼’, ‘땅만큼’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2독서에서 사도바오로는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로마13,8). 하며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참으로 연약함을 지녔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너무너무 기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면 똑같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에게! 이것밖에 안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것에 젖어있으니까 좋은 줄을 몰라요. 그래서 인사를 바꾸기도 합니다.‘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땅도 알고, 하늘도 알고!’즉 ‘하늘도 알고 있을 만큼, 땅도 알고 있을 만큼 사랑해!’합니다. 사랑을 하려거든 하늘 앞에, 땅 앞에 부끄럼 없이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백성들을 미리 경고하여 하느님을 거슬러 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도 그런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까닭에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지 않아 그 결과로 어떤 화라도 당하게 된다면 에제키엘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경고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위험이 닥쳐오는 것을 미리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경고를 듣고 호응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은총이 풍부하더라도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제키엘은 악인에게 선행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길을 가르쳐 줄 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윤리도덕의 타락, 배금사상, 사치풍조, 낙태 등등의 죄악을 고치라고 선언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려지느냐 들려지지 않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상이 하느님의 메시지를 바르게 들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외쳐야 합니다. 말과 모범으로 충고를 하는 것이 사랑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그 소명을 받았습니다.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고는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도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18,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타이르는 일, 충고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칭찬은 달디 달지만 충고는 한없이 쓰니 섣불리 쓴 약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도 알고 땅도 알만큼 큰 사랑을 갖지 않은 이상 섣불리 충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땅도 알고 하늘도 알만큼 큰 사랑이 없는 한 칭찬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칭찬은 그로 하여금 칭찬의 노예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달지만 독이 되기 쉽고, 충고는 쓰지만 약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찬과 충고하기에 앞서 주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충만케 해야 하겠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충고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충고해서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부터 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좋은 충고를 받아들여 현명하게 판단하고 수행하십시오. 충고는 하느님의 소리요, 하느님의 뜻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인다”(잠언12,15).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고를 할 수 있는 큰 사랑과 온유함을 간직해야 하며 동시에 충고를 하느님의 소리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함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단죄하거나 무안을 주거나 장황한 설교를 하지 않고, 다만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의 인격은 존중해 주셨습니다. 형제적 충고는 바로 단순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욕을 당하거나 무안을 당했을 때 그를 단둘이 만나 이야기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을 비난하고 나쁘게 이야기하여 사람들 사이에 그 사람의 평판을 나쁘게 가지도록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단둘이 만나라’,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나를 지지해 주고 그의 잘못된 행동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 있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라.’ 그래도 안 되면, “맺고 푸는“권한을 가진 ‘교회의 도움을 받아라.’ 이렇게 형제적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묵시록에 보면,“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히 노력하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묵시3,19).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히브12,5-6.11). 그러므로 하느님의 소리로, 하느님의 뜻으로 다가올 충고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소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큰 은총입니다. 한 주간 바른 충고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도록 기도하고 듣기 좋은 소리보다 바른 말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추석명절에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서로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말고 경청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부로 충고해서 가슴에 상처를 주는‘멍절’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무엘 하권 12장 을 보면, 나단이 다윗을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에게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단에게 소리쳤습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는 그런 짓을 하고도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그 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습니다.“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그러자 다윗은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고 주님께서 내리시는 시련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

 

결국 죄의 씨는 죽고 밧 세바가 아들을 낳게 되는 데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습니다. 누구나 잘못을 범하여 하느님 눈 밖에 날 수 있으나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죄를 고백하면 그분의 크신 자비가 새 삶을 살도록 안배하십니다. 예언자 나단의 소리를 귀여겨들었던 다윗처럼 우리도 쓴 소리를 귀여겨들을 줄 알고 하느님의 자비에 나를 온전히 맡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더 큰 은총이 우리를 감싸주실 것입니다. 충고를 하느님의 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공자께서는“나를 착하다고 말하여 주는 사람은 내게 해로운 사람이며 나를 나쁘다고 말하여 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이슬란드의 격언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님아, 님아, 별사람이 별의 별 소리를 다 해도 곧이 듣지 말고 짐작하여 들으소서.”.“사람은 모두가 자신을 꾸짖을 수 있는 것을 기회만 있으면 타인을 꾸짖으려 한다”(로슈푸코).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말하며, 그것을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의 그림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들이 스스로의 과오를 보며 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볼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자기 단점을 고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나를 꾸짖으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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