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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7 조회수985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7일 연중 제23주일
 
whatever you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Mt.18,18)
 
 
제1독서 에제 33,7-9
제2독서 로마 13,8-10
복음 마태 18,15-20
 

언젠가 신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갔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글쎄 어떤 자매님께서 언성을 높이면서 다른 자매님을 공격하는 것이었지요. 들어보니 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로 인해 자신의 체면에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가톨릭 신자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말씀까지 하면서 자신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처음 뵐 때부터 조금 독특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하시니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저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모든 분들이 이 자매님을 슬슬 피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옳을 수 있습니다. 즉, 정의로운 모습이고, 이치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의와 이치에 맞음을 큰 소리로 주장함에 따라 피해를 본 것은 누구였을까요? 자신이 생각했던 정의롭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던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정의와 이치를 따졌던 나의 과격한 행동이 자기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힘들게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정의와 심판을 내세우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맨 앞자리에 놓으셨던 것은 사랑이었고 또 용서였습니다. 그래서 정의와 심판을 내세워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닌, 사랑과 용서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시고 힘차게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뜻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면서, 정의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함부로 외치고 있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이 세상을 주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배제된 상태에서 정의와 이치를 따지고 들면 더욱 더 힘들어 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정의와 이치를 따지며 사는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상태에서 외치는 정의와 이치는 결국 주님이 아닌 자기만을 내세우는 오만과 이기심의 발로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죄의 용서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에서의 우리 행동 하나 하나가 중요함을 이렇게 이야기하시지요.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소홀히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남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할 때가 많습니다. 혹시라도 다툼이 생길까봐, 또 복잡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이지요. 이런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해 주님은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라면서 주님의 길로 이끌어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이웃이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자신이 먼저 좋은 모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2독서에서 이야기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내 몸을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공지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

두 나그네가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여행을 한 탓에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파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도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마을에 다다라 어느 집 대문을 힘껏 두드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밀자 문이 그대로 열렸다.

그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 하나가 천장 높이 매달려 있었다.

'저 과일을 꺼내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한 나그네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 내릴 수가 없어. 빨리 다른 집으로 가는 게 좋겠어."

그는 다른 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부엌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다른 한 나그네는 바구니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난 저 과일을 꼭 꺼내 먹을 거야. 아무리 높이 매달려 있어도 누군가가 저기에다 걸어놓은 거야. 그렇다면 꺼낼 수도 있는 거야."

그는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고, 곧 헛간에서 사다리를 찾아 부엌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 높이 매달린 바구니 속 과일을 꺼내 먹었다.

위의 글은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탈무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나그네를 통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쉽고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삶을 살 것인지가 대조되고 있지요. 당연히 후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 필요한 것은 나만의 사다리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나만의 사다리를 찾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고통과 시련도 나의 걸림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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