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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집'으로의 귀가 - 2014.9.8 월요일 한가위(순례20일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9 조회수879 추천수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9.8 월요일 한가위(순례20일차), 요엘2,22-24.26ㄱㄴㄷ 요한 묵14,13-16 마태12,15-21

                                    

'주님의 집'으로의 귀가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뻣노라."
위 약식 기도서 3시경 시편 구절은 이 번 산티아고 순례여정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부르고스에서 여기 혼타나스까지 31.4km, 
지금까지 중 가장 멀리 걸었고 힘도 들었지만 기쁨도 가장 컸던 여정이었습니다. 
추석 전날 주님이 주셨던 참 좋은 날의 선물이었습니다. 

순례20일차 오늘까지 쾌청한 날씨에 덥지도 춥지도 않은 참 좋은 날들이었습니다. 
도착한 오후 늦게야 빗방울이 떨어졌고 다시 갤 모양입니다.

새삼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의 힘, 사랑의 힘을 마음 깊이 느낍니다. 
기도와 사랑이 아니었던들 애당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번 순례길입니다.

여기 스페인 땅은 하도 넓은 땅이라 마을에서 마을까지 거리가 35-55분, 약4-8km되는 거리에 
어디나 온통 지평선으로 에워싸인 광활한 밭의 구릉에 평원이지만, 어제는 약10km의 거리였습니다. 
부와 쾌락의 상징같던 아름다운 도시, 부르고스를 벗어 날 때는 나를 듯 상쾌했습니다.

"떠나는 재미, 맛, 기쁨의 순례여정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는 기분입니다."
좀 심한 표현이지만, 이냐시오 도반의 화답입니다. 

순례여정중 가장 설레고 기쁠때는 깨끗이 배낭 싸들고 떠날 때입니다. 
아마 이 맛으로 순례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세상 떠날 때도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집을 상징하는 목적지, 산티야고가 날로 가까워진다는 기쁨 때문일 것입니다. 

하여 강론 제목은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뻣노라!'로 택했습니다.

어제 마지막 10km정도의 지평선만 보이는 평원의 끝없는 길을 걸을 때는 나를 듯 기뻤습니다. 
피곤과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샘솟는 힘에 기쁨이었습니다. 

'하늘 보면 마음은 훨훨 날아 흰구름 되네'의 옛 자작시가 절로 떠올랐습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까지 내 마음의 시야도 확장되는듯 했습니다. 
점처럼 작은 내 존재가 역설적으로 온우주를 담은 무아의 텅 빈 공간처럼 
대자유인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마침내 순례여정 중 가장 편하고 아담한, 고원의 분지와도 같은 곳에 자리한 아담한 마을, 
알레베그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이런 체험을 했다면 
어리석게도 자기 감옥 속에 갇힌 수인처럼 폐쇠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겐 떠남의 수련이 전무했습니다. 
인생은 언젠가 떠나야 할 나그네임을 잊고 영원히 살듯이 착각했습니다. 

그가 떠남의 기쁨을 알았다면 
앞문, 뒷문, 윗문을 활짝 열고 이웃과 하느님과 소통하며 참 자유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바로 탐욕이 근본적 장애물이었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요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복음입니다. 
무욕의 기쁨, 무욕의 지혜입니다. 

탐욕의 자리에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할 때 샘솟는 기쁨입니다. 
그대로 요엘 예언자의 권고가 실현됩니다. 

바로 오늘 한가위, 하느님과 더불어 이웃과 나눌 때의 기쁨을 상징하는 다음 구절입니다.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너희는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추석을 맞이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의 삶과는 극명한 대조가 됩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자족하는 부자의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었음이 들어납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입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이런 어리석은 부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어쩌면 이 꿈을 꾸고 난 후 어리석은 부자는 대오각성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여 분도성인은 '늘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고 당신의 수도형제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하느님과 이웃과 활짝 열린 소통의 삶을 살아왔던 이들은 
요한을 통한 다음 주님 말씀에 공감할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 기쁜 발걸음으로 주님의 집을 향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말씀처럼 주님의 환대를 받으며 고향집인 주님의 집에 귀가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집에 돌아 온 우리 모두를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6).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시편6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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