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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준주성범 : 제20장 고요함과 침묵을 사랑함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0 조회수695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20장 고요함과 침묵을 사랑함

 

 

1.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적당한 때를 찾아라. 그리고 자주 하느님의 은혜를 묵상하라. 호기심거리는 무엇이든 버려라. 취미거리보다는 마음을 감동하게 할 만한 것들을 읽어라. 무익한 담화를 하지 말고 필요 없는 왕래를 끊고 헛된 소문과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게 되면 묵상하기에 적절하고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위대한 성인들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피정을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택했다.

 

 

2. 어떤 사람(세네카)"내가 사람들과 상종할 때마다 항상 전만 못하여 돌아왔노라."라고 했다. 우리도 오래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그런 경험을 자주 한다.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밖에 있으면서 자기를 온전하게 지키는 것보다 쉽다. 그러므로 내적 영성생활에 뜻을 둔 사람은 많은 군중을 피하여 예수님과 함께 지내야 한다. 누구든지 무명의 생활을 즐기지 않으면 남의 눈앞에 안전하게 나설 수 없다. 누구든지 침묵을 즐기지 않으면 말에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기꺼이 남의 다스림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 누구든지 잘 순명할 줄 모르면 적절하게 명령을 내릴 수도 없다.

 

 

3. 누구든지 자신의 착한 양심을 증명할 수 없으면 안심하고 즐거워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인들은 안전히 살면서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놀라운 덕행을 하고 많은 은총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덜 조심하거나 덜 겸손하지 않았다. 악인들이 안심하는 것은 교만과 자존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마지막에는 스스로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 네가 아무리 착한 수도자로 보이고 신심 있는 은수자로 보일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완전히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믿지 마라.

 

 

4. 흔히 남들보다 낫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믿어서 큰 위험을 당하곤 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을 위해서는 유혹이 있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며, 자주 시련을 겪는 것도 필요한데, 이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어 교만해지고 심지어는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열중하여 외적인 안락함을 쫓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일 지나가는 현세의 낙을 한 번도 찾지 않고, 한 번도 세속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의 양심은 얼마나 맑겠는가! 사람이 만일 헛된 근심을 다 버리고 영혼에 유익한 것들과 거룩한 것들만 생각하고 하느님만을 신뢰한다면 그 평화와 고요함은 얼마나 위대할까!

 

 

5. 누구든지 끊임없이 통회하지 않으면 천상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 네가 진심으로 통회하기를 원하거든 "잠자리에서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잠잠하여라."(시편 4,5) 하신 말씀같이, 네 방에 들어가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피하라. 네가 밖에서 자주 잃어버린 것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에 항상 머물면 방에 머물기가 좋아지고, 방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방에 머물기에 염증이 난다. 네가 입회할 때부터 힘써 방에 잘 머무르면, 결국 네 방은 사랑하는 벗이 될 것이요, 달고 단 위로가 될 것이다.

 

 

6. 침묵과 고요함 가운데서 신심 있는 영혼은 발전하고 성경의 심오한 진리들을 배운다. 침묵과 고요 가운데 슬픔과 통곡의 눈물로 밤마다 자기를 씻고 정화한다. 세상의 모든 번잡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만큼 더욱 조물주와 가까워진다. 그러니 하느님과 하느님의 거룩한 천사들은 아는 이들과 친구를 떠나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자신의 구원을 소홀히 하며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는 숨어 살며 자기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낫다. 수도자가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고, 남의 눈에 보이기를 피하고, 사람들을 볼 뜻을 갖지 않는 것은 칭송할 만하다.

 

 

7. 네가 소유하기에 부당한 것을 무엇 하러 보려 드는가?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간다.'(1요한 2,17). 육체의 욕망으로 인해 우리는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와 같이 한 것이 양심의 짐을 더하고 정신을 산란케 한 것밖에 무엇이 남는가? 즐거이 나갔던 것이 근심 중에 돌아오게 되고, 밤늦도록 즐겨 논 것이 새벽에 슬픔거리가 된다. 즉 육체의 모든 쾌락은 단맛으로 시작하지만 후회와 죽음으로 끝난다. 자기 방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어찌 다른 데서 찾을 수 있겠는가? 천지와 그 안의 만물을 보라. 이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8. 어디를 가면 하늘 아래 있는 것에서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네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렇게 만족할 경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네가 모든 것을 다 본다 할지라도 그것이 허무한 환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눈을 하늘로 들어 하느님께 향하고 네 죄와 소홀함을 뉘우쳐 기도하라. 헛된 사물은 헛된 사람들에게 버려두고 하느님께서 네게 명하신 것에 마음을 두어라. 네 안의 문을 잠그고 네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불러라. 그분과 같이 네 방안에서 살아라. 다른 데서는 그만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네가 밖에 나가지 않고 또 이러저러한 세상의 풍설(風說)을 듣지 않았으면, 크나큰 평화 속에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바깥의 소식을 즐겨 듣곤 하기 때문에 마음의 번민을 겪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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