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축복받은 날, 축복받은 사람 - 2014.9.10 연중 제23주간 수요일(순례22일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0 조회수1,152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2014.9.10 연중 제23주간 수요일(순례22일차).  1코린7,25-31 루카6,20-26

                               
축복받은 날, 축복받은 사람


여기 순례여정의 날들이 다 축복받은 날이지만 추석을 전후로 한 3일은 특히 어제는 더 그러합니다. 
복받은 날에 축복받은 사람이 이냐시오 도반과 저입니다. 
이냐시오 도반은 완전히 저의 수호천사가 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그대로 체험한 날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대신, 가난한 순례자 이냐시오 형제와 저 프란치스코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며칠 전 있었던 예화를 비롯해 엊그제와 어제의 체험을 나눕니다. 
부르고스 알베리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면서 웃음이 나옵니다.   

우선 알베리게에 도착하면 샤워를 합니다. 
샤워후 문을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시도해도 열리지 않아 당황하여 문을 열어 달라 소리쳤습니다. 
잠시 문이 옆으로 드르르 열리면서 
친절한 순례객들이 옆으로 여는 것이라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해 줬습니다. 
옆으로 열면 스르르 가볍게 열리는 것을 잠시 잊고 계속 밀어댔으니 열릴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부끄러워 쏜살같이 사라졌지만 정말 많이 깨달았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습니다.

이어 엊그제 알베리게의 선정도 좋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미니시펄이라 하여 믿고, 또 몇 사람이 등록후 안내 받는 듯하여 저희도 등록하고 안내를 받았습니다. 
들어가 보니 규모도 작고 어린 자매 두명만 있었고 
침실은 물론 주변 환경이 몹시 열악하여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형제뿐 아니라 저도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불편했습니다. 
이미 지불한 도합 8유로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감이 이상하여 즉시 문밖을 나가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다른 알베리게를 방문하니 
정원에 풀장과 더불어 낯익은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습니다. 
전광석화, 망설일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냐시오 도반을 재촉하여 이미 지불한 8유로를 포기하고 떠난다며, 
짐 싸들고 새로 택한 알베리게에 도착하니 얼마나 통쾌하고 흡족한지요. 
바로 이날은 추석날이었고 
저녁도 알베리게 식당에서 잘 먹었으니 가난한 순례자에게 하느님 주신 당신 나라의 체험이었습니다. 

추석 다음 날 새벽에 강론 완성 후 방에 들어 와 보니 스틱이 없었습니다. 
즉시 어제 잠시 머물렀던 알벨리게에 스틱을 놓고 나온 줄로 착각하여 
새벽 그 알베리게를 찾았지만 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다시 포기하고 침실에 들어 섰을 때 형제가 헤드랜턴으로 스틱있는 쪽을 가리켰습니다. 
저의 순전한 착각이었습니다. 
다른 형제의 것으로 알았는데 분명 제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저에겐 좋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배낭의 짐을 싸들고 미사를 드리러 내려왔을 때 
뒤따라 내려 온 형제가 소켙과 아이패드와 휴대폰을 전원에 연결하는 줄을 들고 내려왔습니다. 
이것들 분실하면 휴대폰, 아이패드 사용도 끝납니다. 
함께하는 도반이 얼마나 고맙고 필요한지 절감했습니다. 

새벽 조촐한 미사 중 
유럽의 노년부부가 조용히 참여하였고 성체를 나눠주니 매우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로만컬러가 있는 셔츠를 가져온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사제복장은 미사처럼 만인의 보편언어가 된 느낌입니다. 
어제 페르난도 알베리게 주인도 저에게 강복을 청했습니다.

추석 다음날인 어제의 새벽길도 잊지 못합니다. 
물길 따라 족히 1시간 반은 보름달을 안고, 추석의 축복 가득 받으며 걸었고 
이어 끝없이 난 길을 걸어 
밝고 따가운 햇살의 축복 속에 오후 12시 반에 까리온 산타 마리아 알베리게에 도착했습니다. 
보아딜라에서 6시 출발하여, 시속 4km 로 6시간 반만에 도착한 것입니다. 
얼마나 활력이 넘치는 알제리게인지 완전 젊은이들로 살아있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무려 7명의 한국 젊은이도 만났습니다. 
이 축복의 알베리게를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하느님 덕분이고 눈치의 결과였습니다. 
음식점이나 병원의 이치와 똑같은 서비스업의 특징을 갖춘 알베리게입니다. 
순례자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 많이 몰리는 곳으로 가면 틀림 없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 믿을만 하고 마음도 편합니다. 
여기서 좋은 분(캐나다 교포 신자; 송글라라)을 만났고 저녁 대접도 잘 받았습니다. 
제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책을 보았다며 너무 기뻐했으며 함께 사진 촬영도 했습니다. 
좋으신 하느님은 넘치는 축복으로 가난한 순례자를 행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스페인의 자연을 보면 왜 스페인에서 성인과 신비가가 많이 나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어디가나 광활한 땅에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이 닿은 지평선뿐입니다. 
얼핏 사진을 보면 사막같이 보이는 밭입니다. 

사막같은 광활한 땅 중심마다 자리잡은 마을입니다. 
마을 중심의 성당은 꼭 사막의 오아시스 같습니다.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입니다. 

마을 한 편에는 공동묘지의 '죽은이들의 마을'과 공존을 이루니 삶과 죽음이 화해한 모습입니다. 
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상징하는 마을의 구조입니다. 
마을의 안정과 평화, 일치의 중심인 성당이요 미사입니다. 

어제 미사에 참석했을 때도 미사의 고마움에 감격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일치를 상징하는 세계 만민의 보편언어인 미사입니다.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뵘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진정 가난한 사람들이요, 이런이들에게 하사되는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온통 신뢰와 희망을 둔 우리 순례자들에게 
하느님은 당신 나라의 축복을 체험토록 하셨습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사랑과 영원을 체험할 때 현세의 집착에서 이탈하여 초연한 자유의 삶입니다. 
바오로가 그 좋은 모범이며 그의 종말론적 삶의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73,29-31).

하느님을 중심한 가난한 삶에서 하느님의 영원과 사랑을 체험할 때, 
세상에 살되 세상에 절대를 두지 않는 이런 초연한 자유인의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께 희망과 신뢰를 둔 가난한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