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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에게서 배워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3 조회수1,073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성 십자가 현양축일


<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복음: 요한 3,13-17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 나에게서 배워라 >

       

1999년에 개봉된 매트릭스란 영화에서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해커로 살아갑니다. 네오는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무엇을 찾는지조차 모르며 그냥 허무감에 빠져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낮에는 현실에 꽤나 잘 적응해 살지만 또 남이 보지 않는 삶에서는 약간의 일탈로써 얻는 쾌락으로 삶의 에너지를 찾아보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찾아온 이상한 손님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총알도 피하고 천정을 걸어 다니며 벽을 통과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네오를 찾아와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진실이란 지금 네오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인공지능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깨지 않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자신들이 네오의 꿈을 깨게 해 주기 위해 자신들도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오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기한 사건들을 접하며 조금씩 그들의 말을 믿어갑니다.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는 모피어스란 남자는 그에게 파란 약과 빨간 약을 주며, 파란 약을 먹으면 그냥 다음 날 아침에도 침대에서 일어나 일상적으로 (꿈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빨간 약을 먹으면 이 현실이 모두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이고 꿈과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 번 선택하면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합니다. 진실된 세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난 곳은 미래의 시대입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어 인간을 통 속에서 재배하여 인간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 자신들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컴퓨터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배터리에 불과했다는 끔찍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반란을 일으키면 골치 아프기 때문에 인간들을 꿈꾸게 해서 평생을 그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꿈만 꾸다가 에너지가 더 이상 생성되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버려지게 됩니다. 자신이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기계에 의해 재배당하며 꿈만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꿈속의 세상에선 외로운 사람으로 남습니다. 이것이 꿈이라고 말하면 모든 이가 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냥 이 시스템에 길들여 살아가는데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 꿈을 깨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가 만들어낸 절대 이길 수 없는 요원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에게 걸리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꿈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습니다. 정신이 죽으면 육체도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이 이 엄청난 진실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큰 죄책감을 줍니다. 그들과 맞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야합니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이 먼저 이 세상이 꿈임을 완전히 믿는 것입니다.

네오는 가짜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스승 모피어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세계가 꿈인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온갖 무술을 다 연마하고 모피어스와 대련을 하지만 결코 모피어스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네오는 그것이 모피어스의 힘과 민첩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숨을 헐떡입니다. 그때 모피어스가 말합니다.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꿈의 세계란 뜻. 꿈속에서 어떻게 숨이 찰 수 있느냐는 질문) 네가 지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다시 해봐!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해!(여기가 꿈이란 현실을 믿으라는 것).”

그때야 네오는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자신이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일뿐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너무 적응이 되어있다 보니 자신은 저렇게 힘이 세고 빠른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지식, 사람이 새처럼 절대 날 수 없다는 지식,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어야 한다는 지식 등이 자신을 사로잡아 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으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자신을 완전히 버릴 수 없기에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모피어스는 계속 말합니다.

그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거야. 나는 문까지만 안내할 수 있지. 그 문을 나가는 건 네가 직접 해야 돼. 모든 걸 버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마음을 열어.”

 

이 세상은 교육이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이 세상이 허상이고 이 세상과 싸워 이겨야한다는 것을 결코 가르치지 않고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고 아침이라도 먹고 학교에 등교하라고 하면 성적이 떨어져 큰일이라도 날듯이 그런 정책에도 반대를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다그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이 세상 법칙에 순응하며 살도록 교육을 합니다. 자격증이 있고 전문가가 되어야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며 그 꿈에서 깨지 못하도록 합니다. 물론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런 교육들이 참 깨달음을 방해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교육하는 것은 자녀들의 성공입니까, 아니면 행복입니까? 장수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입니까?

 

다시 영화로 돌아옵니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이 세상을 구원해 줄 예언된 자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오라클이라는 예언자에게 데려갑니다. 그런데 오라클은 네오를 보며 그가 예언된 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피어스가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이라고 믿으며 목숨을 바칠 것인데 그를 살리려면 네오가 대신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모피어스는 네오를 살리기 위해 요원들에게 잡힙니다. 모피어스가 죽음에 임박하자 네오는 자신이 예언된 자가 아니라고 고백하며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컴퓨터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적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을 절대 이길 수는 없는 일이기에 대신 죽기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모피어스를 구하고 그는 총을 맞고 죽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자로 끝까지 믿고 있는 그를 사랑하는 트리니티란 여자의 입맞춤으로 다시 눈을 뜹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은 수많은 코드로 이루어진 가상현실이었습니다. 믿고만 있었던 것이 실제 허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만나면 무작정 도망을 쳐야만 했던 적들도 모두 가짜였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계속 가짜들을 이길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더 이상 그것들은 네오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네오가 참으로 구원자였던 것입니다. 참 구원자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까지도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인 것입니다. 순교자들처럼 자신을 몇 번이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야 이 세상에 얽매여 살아가는 노예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이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 되시는지를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켜 광야를 지날 때 백성들은 모두 사막의 삶에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들을 물어죽게 하시기 위해 불뱀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여 용서를 청하자 구리로 만든 뱀을 장대에 달아놓고 그것을 바라보면 뱀에 물렸어도 죽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 장대에 매달렸던 뱀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그분을 믿는 누구나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당신이 뱀이 되시는 것입니다. 뱀은 곧 이 세상에서 살아보려는 우리 자신입니다. 자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허상에 불과함을 믿으려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까지 가차 없이 내어던지는 모습을 보기 전에는 참으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이 생명을 내어던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따라해야 할 본보기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명예와 돈과 쾌락과 애정 등에 매달려 쩔쩔매며 살아가게 만드는 우리 자아를 장대에 매달아 죽인다면 그것이 참 구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었어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 듣습니다.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는 한 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 말해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습니다.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또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으나 참고 있다가 한 달 후에 또 갔습니다.

애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 절대로 사탕을 안 먹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했나요?”

실은 나도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가 있나요. 내가 사탕을 끊는데 두 달이 걸렸답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당신을 보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당신 본보기를 보고 배우라는 뜻입니다. 당신 십자가에 당신 자아를 매단 것을 모델로 하여 우리 속에 있는 뱀도 매달으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본보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본보기를 보면 따르고 싶어집니다. 그 본보기를 보고 우리 또한 이 세상과 우리 생명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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