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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4 조회수947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desert,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Jn.3,14-15)
 
 
 
제1독서 민수 21,4ㄴ-9
제2독서 필리 2,6-11
복음 요한 3,13-17
 

예비신학생 모임을 하는 인천 대건고등학교에는 예비신학교 사무실이 있습니다. 인천교구의 예비신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특별히 배려를 해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무실은 매일 사용되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더구나 방학을 빼면 일 년에 열 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닫혀 있는 방에서 좋은 냄새가 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성소국 수녀님께서 2학기를 시작하면서 사무실 청소를 하고 오셨는데, 정화조 냄새와 각종 벌레 때문에 청소하기 너무나 힘들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는 닫혀 있는 방에서 좋은 냄새가 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벌레가 들끓게 되면서 들어가고 싶지 않는 방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마음을 열어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좋은 향기를 풍길 수 없으며, 세상의 추한 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람들은 우리를 슬슬 피할 수밖에 없겠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실천은 바로 우리를 좋은 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세상의 원리원칙을 내세우면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나의 커다란 손해를 가지고 오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몸에서 나쁜 냄새를 풍기는 흉한 죄들이 들끓게 된다는 것을 모르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좋은 냄새를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겉으로는 초라하고 형편없어 보이지만, 이 십자가의 향기는 죄로 물들은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사랑 가득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내 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면서 나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는 날이 바로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며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지금 내 몸을 통해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우선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앞서 닫혀 있을수록 좋지 않은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이웃을 받아들이지 않는 닫힌 마음으로는 주님의 향기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멀리하셨던 세상의 길이 아닌, 주님께서 걸으셨던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더러운 죄가 내 곁에 가득한 것이 아니라, 좋은 향기를 풍기는 선함이 내 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을 바꾸어라. 그러면 당신의 세계가 바뀐다(노먼 빈센트).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중에서)

여기 어떤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합시다. 그가 평신도든 사제 혹은 수도자든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마음을 돌려 새 출발을 했다면,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더불어 주님은 용서하실 때,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서 중요한 점이자 우리가 회심해야 하는 이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잊어버리셨지만 우리는 잊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주님이 우리들의 죄를 잊지 않으실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신학적으로 죄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베드로 사도에 대해 묵상합니다. 사실 그는 최악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부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죄를 교황도 범합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용서하신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잊어버리신다는 것을 자주 잊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잊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따르기보다는 세상의 모습을 따라서 용서하지도 못하고 또 그들의 죄도 계속 기억하려고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잊어버리십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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