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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4년 9월 18일 목요일 복음 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8 조회수88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4년9월18일 연중 제 24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루카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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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를 받아 예수님께서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불리어지던 한 여인이 느닷없이 향유를 들고 들어와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낸 후, 향유를 바르고 입을 맞춥니다.
그것도 죄를 판단하는 것이 일이었던 바리사이의 집에서 말입니다.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 있는 바리사이의 못마땅해 하는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읽으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죄는 용서받았다 하시며 그녀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간단한 줄거리입니다.

이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를 지어도 뉘우치면 용서를 받으니 너무 죄짓는 것에 부담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같은 맥락으로,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5,20)라고 하신 말씀이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오, 복된 탓! (O Felix Culpa!)’이라고 하신 말씀도 죄를 짓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인간과 죄’ 그리고 ‘하느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진실이지만, 우리는 애를 써도 죄 안에서 살게 되어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면 우리가 있는 곳에는 죄가 있어 왔고, 어느 누구도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병든 사람이지요.

누가 어떤 죄를 어떻게 얼마나 지었느냐를 가지고 따져 판단하고, 그에 응당한 처벌을 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공동선을 위한 질서라는 말로도 표현을 합니다.
바리사이 역시 전문가답게 똑같은 논리로 그 여인을 단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녀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읽으셨습니다.
참된 사랑에 의한 뉘우침과 용서의 체험, 감사와 보속의 마음을 그녀 안에서 보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은 세상의 시선도 단죄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안다는 것, 죄 안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커다란 고통이지만, 동시에 죄를 미워할 수 있는 은총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여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이 보여준 행동을 사랑이라 말씀하셨고, 그 사랑은 그녀가 용서받은 것을 드러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의 죄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봅니다.
다시 일어서십시오.
우리의 죄를 완전히 이해하시고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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