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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8 조회수752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When the Lord saw her,
he was moved with pity for her and said to her,
“Do not weep.”
He stepped forward and touched the coffin;
at this the bearers halted, and he said,
 “Young man, I tell you, arise!”
(Lk.7,12-13)
 
 
제1독서 1코린 12,12-14.27-31ㄱ
복음 루카 7,11-17


요즘에는 세상 사람들 모두 사진기자들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광경만 보여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거든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에 붙어있는 사진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휴대전화에 내장되어 있는 기능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이를 이용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많이 찍어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얻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한 백 장을 찍어야 마음에 드는 사진 한 두 장 얻을까요? 어떤 때에는 그 한 두 장도 얻지 못해서 그냥 다 삭제를 한 적도 있습니다.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한 것일까요? 아니면 사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일까요? 그런데 몇 년 전 책을 출판하기 위해 어떤 사진작가와 함께 작업했던 일이 떠올려 집니다. 하루 종일 함께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는데 정말로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더군요. 저는 “이제 그만 찍으세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분께서는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많이 찍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나중에 당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셨는데, 그날 하루 동안만 3천 장이 넘는 사진을 찍으셨더군요. 셔터만 3천 번 이상을 누른 것입니다.

사진작가가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할까요? 아니면 쓰고 있는 사진기가 좋지 않은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유명한 사진작가였고, 또한 쓰고 있는 사진기 역시 그 당시에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몇 백, 몇 천 장의 사진을 찍어야 겨우 몇 장을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안일한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거두어 버립니다. 재능이 없다고요? 또 내 주변 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고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재능 탓, 주변 환경 탓을 하면서 지금의 상태에서 그냥 멈추어 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래서 주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잘 알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서도 희망을 전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이 외아들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죽어서 관 속에 들어간 그래서 그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세상에서 말하는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는 말씀을 통해 다시 살려 주십니다. 죽었기에 이제 이 세상 안에서는 어떤 미래도 없는 상황인데, 주님께서는 아들을 잃어 슬퍼하는 과부를 가엾이 보시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재능과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에 주님께서는 밝은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니까요.

조그마한 친절이, 한 마디의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J.F. 카네기).


 

우리의 노력은?

몸이 허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자신의 모습과 달리 아주 싱싱하고 아름다운 야자나무를 본 것입니다.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의 성장을 막기 위해 나무 꼭대기에 커다란 돌을 얹어 놓았습니다.

몇 년 후, 그는 다시 이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성장하지 못하도록 커다란 돌을 얹어 놓은 나무가 생각난 것입니다. 미안하기도 했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글쎄 그 나무는 주위에 있는 다른 나무들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자라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올려놓은 돌이 오히려 그 나무의 뿌리를 더 깊이 땅속으로 자리 잡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나무는 더 높이 치솟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게 돌이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키듯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유혹 역시 하느님 안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고 더욱더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습관을 바꾸려면 이십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작심삼일을 통해서는 습관이 바뀔 수 없지요. 최소한 이십일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당장은 힘들어도 오늘부터 이십일 동안만 노력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 노력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우리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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