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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18 조회수751 추천수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To what shall I compare the people of this generation?
What are they like?
They are like children who sit
in the marketplace and call to one an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weep.’
(Lk.7,31-32)
 
 
제1독서 1코린 12,31─13,13
복음 루카 7,31-35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왜 산에 오르세요?”라고 물었을 때, “정상에 오르려고요.”라는 대답을 듣기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산이 좋아서요.”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더군요. 하긴 등산을 할 때, 정상만을 바라보면서 산을 오르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산을 오르는 것이 좋아서 산을 찾으면 처음 한 걸음부터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상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어쩌면 이를 향한 과정이 아닐까요? 목표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중요한 과정을 힘들게 하거나 파괴시킵니다. 더군다나 이 사회는 목표만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 과정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말 등등……. 이런 목표지상주의가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느 책에서 ‘인간은 목적을 달성한 이에게 관심을 갖지만, 신은 열심히 노력하는 이의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하긴 우리가 결정한 목적이 주님의 입장에서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 모든 것들이 하찮고 별 것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적과 달리 과정은 다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이시지요. 그런데 그러한 부족함과 나약함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어떻게 좋게 보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갓난아기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튼튼하게만 잘 자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 갓난아기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모습이 예쁘지 않습니까? 응원을 하면서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무한대의 시간, 영원한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 시간 안에서 우리의 모습은 한낱 갓난아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실까요? 우리가 갓난아기의 노력에 감탄하듯이,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에 힘찬 응원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의 반대로 살아간다면 주님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할 때에는 울지 않는 사람’에 비기면서 비판하십니다. 이들은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 즉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는 노력하라고만 외치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 봅시다. 혹시 과거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주님의 뜻에 반대하면서 거짓과 위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묵묵히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늘 나라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일수록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된다(포르투갈 격언).


 

염치없는 우리

예전에 갑곶성지에 있을 때, 성지 순례 후에 성지 곳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시는 분들에게 뻥튀기를 한 그릇씩 퍼서 드렸습니다. 성지를 찾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지요. 그렇게 몇 달을 했었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성지에 있을 때에는 상관이 없는데, 제가 잠시 외출을 했을 때에는 뻥튀기를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뻥튀기를 왜 안 주느냐면서 따지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맡겨놓은 것을 찾으러 온 사람처럼 말이지요. 염치없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뻥튀기 드리는 것을 멈췄습니다.

어쩌면 주님께 염치없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드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즉, 주님께 맡긴 것을 찾으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뭐 달라, 뭐 해 달라.’만을 외치는 기도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염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도 더 기뻐하시고, 당신의 사랑을 더 많이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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