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유래와 의미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0-31) 3월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가브리엘 천사가 임마누엘 구세주 예수님의 잉태-탄생 소식을 마리아에게 알린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 안에서 고대부터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며 기념해 온 성모님 축일이다. 주님 탄생 예고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하였던 대로(이사야 7,14) 오래도록 기다려온 구세주 강생에 대한 희망의 성취를 알려주는 사건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심을 예고하는 구원의 참으로 은혜롭고 아름다운 서막이다. 그 중요성 때문에 성주간과 성삼일에 포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매우 장엄하게 지내고 있다.(동방 비잔틴 교회에서도 사순절 기간에는 다른 축일의 거행을 허락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이날만큼은 성주간과 성삼일 기간에 포함되더라도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이 대축일을 3월25일에 거행하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12월25일)을 역사화 하는 과정에서 그날로부터 아홉 달을 역산하여 지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도 여느 인간처럼 어머니 태중에서 만 아홉 달을 지내셨음을 의미한다. 이날을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聖母領報大祝日)이라고 했는데, ‘영보’(領報)란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그리스도의 잉태 소식을 듣고 받아들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주요 장면이 묵주기도의 환희의 신비 1단과 삼종 기도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와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이 핵심 의미 3월25일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로 지낸 기원은 561년 유스티니아노 1세 황제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탄생 예고 축일은 하느님의 큰 은혜가 드러난 3월25일에 성대하게 지내야 한다”고 밝히면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550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다”고 언급한 데에 두고 있다. 서방 교회에는 7세기 무렵에 도입되었으며, 먼저 로마와 스페인에서 거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담긴 핵심적인 의미는 하느님의 인간 구원 계획에 따른 구세주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와 이 구원 계획에 협력한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이다.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의 방식을 드러낸다. 사실 우주와 시간의 창조주이시며 무한한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이시니 강생의 방식으로 다니엘 예언서에서 묘사했듯이 ‘구름을 타고’ 오는 형태를 택해도 문제 될 게 없었을 텐데, 굳이 시골의 한 처녀를 택하여 당신의 계획을 천사를 시켜 알리고, 이에 대한 응답을 강요가 아니라 설명을 통해 자유의지로 발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셨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강생의 방식을 정함으로써 피조물인 인간 마리아를 ‘구원의 협력자’로 초대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마리아의 태 안에 그리스도의 잉태되심은 사랑의 하느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파스카 신비’의 서막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사람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시기 위해 마리아 태 안에서 인성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시고, 그 인성을 통해 사람들 안에 사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속죄의 제물로 바쳐 파스카의 희생제사를 이루셨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영원한 파스카를 위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섭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인간 구원의 계획에 따라 파스카의 희생제물이 될 운명을 가지고 성령으로 마리아 안에 잉태되신 것이다. ‘예’(Fiat)로 응답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참 신앙의 모델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테오토코스’가 되게 한 응답이다. 마리아는 장차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인간의 이성과 현실을 뛰어넘는 천사의 수태고지에 하느님의 종으로서 주님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의탁하며 그 뜻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신앙인이 지녀야 할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이해와 목숨을 내어 맡기며 주님 뜻대로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예’(Fiat)로 응답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참 신앙의 모델이다. 물론 마리아의 ‘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영웅적 태도가 아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지선지애(至善至愛)로 태초부터 예비하시고 무염시태(無染始胎)로 태어나신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기도 하셨지만, 어릴 때부터 자헌(自獻)하시고 하느님을 한없이 사랑하셨던 분으로서, 마땅히 열심한 기도 속에 늘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열려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신 하느님의 종이면서도 불충하게 핑계들을 대며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받들 줄 모르는, 믿음 부족하고 나태한 종일 때가 적지 않음을 반성하면서 성모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기 위해 깊은 묵상 속에 정성을 다해 자주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의 전구에 의탁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 심령 안에도 성령께서 더 충만히 임하시어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더 기꺼이 순명하는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의 인도와 불사름 없이 나약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를 수 있겠는가!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5월호,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광주대교구 대치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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