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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훈련이 순교를 만든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0 조회수1,122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복음: 루카 9,23-26





예수를 무덤에 안장함


카라바죠 작, (1602-1603),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 훈련이 순교를 만든다 >

             

이성례 마리아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이시고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으로부터 시복된 124위 중 한 분입니다.

대부분의 초대 한국 교회 신자들이 그랬듯이 이성례 마리아도 박해를 피해 자주 이사를 해야만 했고 그것으로 인해 밥을 굶어야 하는 등의 궁핍한 생활을 견뎌야했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굶주림에 칭얼거릴 때면 요셉과 성모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 가시던 이야기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리시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자녀들의 신심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수리산에서 남편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함께 체포되게 되었는데 그녀는 포졸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다음 자식들과 함께 한양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한 살밖에 안 된 아들과 함께 격리수용 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아 팔이 부러지고 살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지만 용감하게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젖이 나오지 않고 먹일 것도 없어서 한 살밖에 안 되는 최 스테파노가 더러운 감옥 바닥에서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보며 마음이 흔들려 마리아는 배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 최양업 토마스를 신학생으로 선발해 마카오로 유학을 보낸 것이 발각돼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주위 신자들의 권면으로 큰 용기를 얻어 순교의 열정을 다시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재판관 앞에서 자신이 배교했던 것을 취소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감옥을 오가며 마리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마음이 약해질 것을 걱정해 둘째에게 형장에 오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지막 당부를 하였습니다.

이제는 다들 가거라. 절대로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잊지 마라. 서로 화목하게 살며,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맏형 토마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참수형을 받을 당시 마리아의 나이는 39세였고 마지막 순간까지 안온하고 평화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참조: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 이성례 마리아]

 

시복되신 순교자들의 삶을 보다보니 의외로 배교했다가 뉘우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순교의 월계관을 쓰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겪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분들도 쓰러졌다 일어났다 하며 믿음을 지켜나갔다는 것을 볼 때면 나의 약한 믿음에 비추어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처음부터 전혀 배교의 마음 없이 엄청난 고문을 참아내고 순교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복자 이일언 욥은 12년 동안 전주 옥에서 모진 고통을 당했지만 세 번이나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며 한결같이 목숨 건지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 욥이 처형장소로 갈 때 자녀들이 울면서 따라오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옥중에서 신음해 오다가 오늘 마침내 천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왜들 우느냐? 오히려 나의 행운을 기뻐하여라. 너희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하고, 너희도 훌륭한 교우가 돼라.”

그러나 저는 배교했다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와 순교의 길로 가는 분들을 보면서, 배교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이들이 처음부터 강한 믿음을 지녔던 것이 아니라 훈련된분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배교했던 분들은 아직 조금 덜 훈련이 되었던 것이고, 배교하지 않으신 분들은 이미 완전하게 훈련되어 싸움에서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된 분들인 것입니다. 결국 신앙은 훈련되는 것입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일만 시간의 법칙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 즉 마스터가 되려면 일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며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스케이트 선수,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그 밖의 어떤 분야에서든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일만 시간은 대략 하루에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간 연습한 것과 같다. 어느 분야에서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아주 특이한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결국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많은 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일만 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해서 어린 나이에도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순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프로 중에 프로만이 할 수 있는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분들이 순교의 천재였다고 보기 보다는 평상시 엄청나고 꾸준한 노력을 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들은 교리공부와 성사생활을 하고 두려움과 가난과 싸우며 자신들을 단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어떤 훈련을 했을까요? 모든 훈련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율법학교 학생이 스승에게 와서 스스로 랍비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스승은 그 자격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저는 제 몸을 단련해서 맨 땅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고, 들판의 풀을 먹을 수 있으며, 날마다 채찍으로 세 번씩 제 몸을 때리며 훈련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귀를 보아라. 저 나귀는 맨땅 위에서 자며, 들판의 풀을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으로 맞는다. 지금까지 너는 나귀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지 랍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훈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훈련시키시는 과정을 한 번 보십시오. 베드로는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물속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풍랑에서 배를 구해보려고도 했으며 또한 목숨을 걸겠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라도 이렇게 쓰러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라면 두려워 할 것이 없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의 앞에 다가올 십자가 형틀 앞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면 못 할 일이 없다는 믿음을 갖는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시키셨던 훈련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연습을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칼을 받으면서도 평온한 얼굴을 할 수 있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순교자들을 본받고 싶거든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만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은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바로 마음의 평화를 세상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돈이나 가족이나 생명을 잃는다고 마음의 평화가 깨어져서는 안 됩니다. 유일하게 불안해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 뿐입니다. 우리 또한 굳건한 믿음으로 죽음 앞에서도 평온한 얼굴을 할 수 있도록 매일 매일의 훈련을 해 나가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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