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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형제자매의 관계형성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3 조회수1,365 추천수10 반대(0) 신고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루카 19-21





형제자매의 관계형성


 

가끔 신자 분들께서 신부님은 형제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들 딸, 아들 딸, 아들’입니다. 남녀의 밸런스도 좋고 3년 터울도 좋습니다” 하고 말씀 드립니다. 그러면서 우리 신자공동체를 생각합니다. 미사 때마다 “형제 여러분” 이라고 하면서 진정 형제로 살아가고 있는가?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진정 형제자매로서의 끈끈한 정을 누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영적으로 맺어진 형제의 관계가 육적으로 맺은 관계보다 결코 더 낫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루카8,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를 중요시하였지만 영적인 형제를 우선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마태10,37). 따라서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19,29)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의 관계보다도 믿음의 관계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 형제를 멀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억매이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투신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다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 형제, 자매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 주님께서 우리 혈연의 부모나 형제에게도 새 형제, 자매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행함으로써 주님의 형제자매가 된다는 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자, 옆 사람보고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하고 인사하겠습니다.

 

히브리서 2장 12절에서 13절 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또 나는 그분을 신뢰하리라.” 하시고 ‘보라, 나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이다.”

 

사실 영적으로 형제인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마태12,50), 그리스도를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요한1,12),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로마8,14),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갈라3,26), 거룩하게 된 사람(히브2,11-12)입니다. 심지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해를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말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함이 없이 살았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써 형제애를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한 신부님께서 누드촌에 와달라는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모두가 다 벗고 있을 터인데 나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시다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신부님은 모두가 다 옷을 벗었는데 혼자만 옷을 입는 것도 어색할 뿐더러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기로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헌금을 어떻게 하지? 걱정을 했답니다.

 

누드촌에서도 역시 고민이 생겼습니다. 누드회원이 아닌 신부님을 초대해 놓고 모두 벗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우리가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밖에 나갈 때는 옷을 입지 않는가? 결국 누드 촌 회원들은 모두 옷을 입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로를 위한 배려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형제, 자매 라고 하면서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합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1887-1968년)
                         송열섭 가시미로



1. 2002년 6월 16일, 오상의 비오 신부님(1887-1968년)이 시성되셨다. 내겐 지나칠 수 없는 날이었고, 1999년 5월 2일 시복식에 이어 3년 만에 찾아온 기쁨의 날이었다. 1987년에 처음으로 "마리아"지에서 비오 신부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우리 시대에 이토록 놀라운 분이 사셨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토록 놀라운 분의 이야기를 이제서야 접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피에트렐치나(Pietrelcina) 출신의 비오 신부님은 1968년 9월 23일에 81세로, 이탈리아 동부에 위치한 산조반니 로톤도(S. Giovanni Rotondo)의 수도원에서 돌아가셨다. 비오 신부님은 카푸친회 수도사제로서 반세기 동안 어떠한 의학적 치료나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한 오상(五傷)을 지니고 사셨다. 손바닥에 난 작은 동전 크기의 구멍에서, 그리고 발과 가슴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수많은 기적적인 병치유가 이 수도사제의 간구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예언, 신비한 향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 공중 부상 등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증언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눈동자가 없어 볼 수 없었던 소녀 젬마 양이 보게 된 것이라든지,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실명한 오른쪽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조반니 사비노의 기적적 치유는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2. 세계 각처에서 수십만의 순례자들이, 어려운 여행에도 아랑곳없이 비오 신부님을 뵙고자 산조반니 로톤도를 찾아온 것은, 단지 기적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수많은 순례자들은 근본적으로 영성적 동기 때문에 비오 신부님 주변에 모여들었다. 대부분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지도와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분을 찾는 첫번째 이유는 그분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십자가의 예수님이 단순히 기억 속에서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현재에 살아계심을 놀랍게 증거하였다.

 

그러하기에 역대 교황님들도 큰 사랑으로 비오 신부님을 대하셨는데, 1921년 교황 베네딕토 15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을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은 돌아가시기 전부터 성인이셨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을 "우리 주님의 오상을 뚜렷이 잘 나타내신 분"이라고 했는데, 그분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같은 증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3. 반세기 동안, 비오 신부님은 하루의 대부분을 고해소 안에서 보냈다. 선종하기 직전인 1967년에는 만오천 명의 여자와 만 명의 남자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고 한다. 사실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며칠씩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참다운 회개와 통회가 선행되어야 했기에 적어도 편안하고 친절한 만남은 아니었다.

 

비오 신부님은 신중하지 않은 이에게는 엄격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대개는 몇 달 또는 며칠 뒤에 되돌아와 진정으로 뉘우치며 고해성사를 보았고, 그로 인하여 삶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이러한 영성 지도에서 그분의 모든 위대함이 드러나는데, 그는 독특한 지도 방법과 영혼들의 고뇌에 그 자신이 함께함으로써 삶을 변화시켰다

 

다음의 말씀이 그 일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4. 또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하여 1시간 반 정도 집전하는 미사는,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같아지려는 그의 영성의 절정이었다. 밤 1시부터 사람들은 성당 문이 열릴 때까지 서서 기도하며 기다린다. 멀리서 온 그들은 하룻밤을 설치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비오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제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는 것이다. 때문에 성당 문이 열리면 성당은 이내 신자들로 꽉 차고, 신부님의 열정 어린 미사는 때론 두 세 시간씩 계속되곤 하였다.

 

비오 신부님의 눈에는 자주 눈물이 고여있었고, "왜요?"라는 물음에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는 미사 드리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미사 때마다 양손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제대포에 떨어지곤 하였는데, 온몸으로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는 미사에 대한 그분의 열정은 다음의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세상은 태양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사 성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대 건너편에는 자주, 멀리서 온 순례자들이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 제가 하느님을 이렇게 늦게서야 알게 되다니." 하며 회개하곤 했다.

 

5. 비오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긴 소송은 1969년에 시작되어 1999년 5월 2일 시복식을 거쳐 2002년 6월 16일로 막을 내렸으나 그분의 사도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리고 타종교인과 믿지 않는 이들이 비오 신부님을 통하여 열성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이 시대에 새롭게 만나는 일이 확산되리라 믿는다.

 

"나는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뒤에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하신 비오 신부님이 그 약속을 이 땅에서 이루어가시리라 믿는다. 성인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심으로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셨듯이,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과 일치하심으로 이 땅의 더 많은 영혼들을 특히 북녘 땅의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나는 고통을 사랑합니다.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께 고통을 받을 수 있기를 간청했고, 그 고통에서 생겨나는 열매 때문에, 또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 때문에 고통을 열망합니다. 내 고통을 통하여 우리 형제들이 구원되고, 불쌍한 연옥영혼들의 고통이 단축될 것입니다." - 경향잡지, 2002년 11월호에서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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